나병환자들은 전염의 가능성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지 못했습니다.
그들끼리 모여 살게 되었고,
그래서 마을 밖에 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사마리아 쪽으로
가시는 길에,
아마도 두 지역의 경계 부분에서,
갈릴래아 쪽에서 봐도 마을 밖이고,
사마리아 쪽에서 봐도 마을 밖인 지역에서
나병환자들을 만나십니다.
치유를 청하는 그들의 말을 들어주신 후
감사를 드리러 다시 돌아온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한 명 뿐이었습니다.
그는 나병에 걸리기 이전에
이미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소외된 경험이 있습니다.
나병이라는 이름으로 이제는
다른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소외되었습니다.
소외된 사람의 아픔을
그 누구보다 절절히 겪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예수님의 관심이 향합니다.
동족인 사마리아 사람들도 거부한 자신에게
이스라엘 사람인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관심, 자비, 사랑은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는 그를 구원으로 이끌게 됩니다.
우리의 아픔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소외되고 고립된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오시는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그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조건을 묻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사람인지, 사마리아 사람인지,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인지,
신앙을 등한시 하는 사람인지
상관없이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 관심이,
그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켜
우리를 다시 하느님께 이끌고
구원으로 이끌게 됩니다.
신앙을 등한시 하는 것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주시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앙을 등한시하더라도
하느님의 관심을 받고 싶은 것은
우리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 사랑, 그 관심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도 조금씩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