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와 지향
2022년 10월 12일 수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하느님의 심판과 사랑을 아랑곳하지 않는 바리사이들
계명 한 가지를 어기면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계명 하나만 어겨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그러니 특별히 더 중요한 계명을 어기는 사람은 그에 합당한 벌을 무슨 수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그런 심한 책망을 들어 마땅한 자들임을 이런 말로 나타내셨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도 물론 해야 하지만 다른 것들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 같은, 반드시 실천해야 할 중요한 임무를 하찮게 여겼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한테 이득이 될 계명들만 철저히 지키고, 사람들한테도 그렇게 해야한다고 윽박았지요.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성인 / 영적 글 묵상
50가지 예수 모습 / 안셀름 그륀
16. 유령 예수
마태오 복음사가는 베드로가 예수넘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께 갔다”는 이야기를 추가로 덧붙였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 그만 겁이 나서 물에 빠지기 시작하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하고 비명을 질렀다. 예수께서 곧 손을 내밀어 붙잡으며 ‘믿음이 약한 사람! 왜 의심했습니까?’ 하셨다"(마태 14,30-31).(89)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10월 성령 열매성월 2주간 인내 / 친절 /성실
금주간 성서읽기 1코린 9-16장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1기 : 500 ∼ 700년
제 2절: 게르만 민족과 교회의 최초 만남
여기서 후에 카를 대제가 그렇게 헌신적으로 투쟁하게 될 사상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프랑크인들이 구 로마의 멸망 후 그리스도의 나라를 유럽의 민족 공동체 안에 제시하고 지고 가기 위하여 부름받은, 새 제국의 민족이라는 사상이었다.
불행하게도 이런 이상은 험악한 현실과는 거의 일치하지 않았다. 투르의 주교 그레고리오는 10권으로 된 지신의 저서 <프랑크 민족사(591년)>에서, 당시 프랑크 왕국의 종교와 도덕 상태에 관하여 참으로 슬픈 모습을 남겨놓았다, 어떻게 사태가 다르게 진행될 수 있었겠는가! 민중은 납득되는 그리스도교 설교보다는 그들의 왕이 보여준 모범과 그리스도교 전례의 외적인 화려함 때문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것이다. 세례는 그리스도교적인 신앙교육도, 고대 그리스도교의 세례 지원기도 거치지 않은 채 주어졌다. 처음으로 주어진 세례라도 사후의 교육이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민족 전체의 집단 개종은 피상적인 것으로 머물렀다. 그래서 고도의 윤리적인 요구와 영적인 신 개념을 지닌 그리스도교는 대단히 느리게, 또 어렵게 관철될 수밖에 없었다. 메로빙거 왕조를 비롯하여 귀족들은 나쁜 모범들을 보였다. 왕
족들 사이의 살인과 골육상잔, 고관들 사이의 싸움과 약탈욕. 민중의 낮은 교육수준과 도덕적 타락 등은 6∼7세기 프랑크인 역사의 특징들이다.
왕과 귀족들이 교회 일에 간섭하고, 교회활동을 방해한 것은 프랑크 교회를 위하여 불행한 것이었다. 왕은 교회의 주인으로 자처하고, 주교좌를 점령하고, 교회회의를 소집하고, 생활을 규정하였다. 바로 이 시기에 동방에서는 대단히 면밀한 신학문제가 신학자들과 공의회에 의하여 토론되고 있는 동안, 프랑크 왕국에서는 신학적 사고가 완전히 중지되었다. 교회생활도 초보적이고, 많은 이교적인 잔재가 침투된 형식을 받아들였다. 가장 나쁜 점은 프랑크 교회가 자신 안에서 경직되고, 바깥 세계에 대하여 폐쇄되고 고립된 영방교회로 변질되어 보편적 교회와의 관계를 상실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서방교회의 중심인 로마와의 관계는, 비록 직접적인 분리는 없었다 하더라도 완전히 소멸되어 있었다.(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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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회 한국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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