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 이사야서는 오실 메시아가 어떤 분이신지 얘기합니다.
이 이사야서를 읽다가 저는 문득 메시아가 어떤 분이시길
사람들이 원할까 생각게 되었습니다.
능력의 메시아?
어제 백인대장의 청을 받아들여 종을 고쳐 주신 주님처럼
내가 아플 때 그리고 내가 청할 때 언제든 고쳐 주시는 메시아?
사랑의 메시아?
고쳐 주시지는 못해도 손을 얹어주시는 메시아?
고쳐 주시지는 못해도 손을 얹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평화를 주시는 메시아?
다른 건 다 없어도 마음의 평화만 있으면 되니,
다른 건 안 주셔도 마음의 평화를 주시는 메시아?
이런 메시아가 내게는 좋은 메시아겠지만
이런 메시아가 진정 메시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당신이 이런 메시아이기를 거부하실 겁니다.
나만을 위한 메시아이시기를 거부하실 것이고,
나만을 위한 메시아는 메시아도 아니실 겁니다.
능력의 메시아도 맞고,
사랑의 메시아도 맞고,
평화의 메시아도 맞지만
나만을 위한 메시아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메시아라고 오늘 이사야서는 얘기합니다.
그래서 먼저 정의의 메시아라고 말합니다.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메시아는 정의로 평화를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평안과 다릅니다.
평안은 나의 안정과 안전을 깨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얻어지는 것이기에
차라리 나 혼자 있을 때 평안하고 많은 사람이 이런 평안을 추구하고,
그렇지만 그런 평안을 깨지기 십상이며 그런 평안은 평화가 아닙니다.
그러나 평화는 기본적으로 관계적이고 관계적이어야 합니다.
평안을 위해 관계를 피하고 배제하는 평화가 아니라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 평화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평화입니다.
좋은 관계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만이 아니고,
평화도 인간끼리의 평화만이 아닙니다.
사람과 짐승 사이의 평화, 짐승과 짐승 사이의 평화까지 모든 평화입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그렇습니다.
메시아의 평화는 모든 평화이고
메시아의 사랑도 모든 사랑입니다.
메시아는 나만을 위한 사랑은 하실 수 없고 ,
평화도 나만을 위한 평화는 주실 수 없으십니다.
그래서 이런 메시아를 보는 눈은 행복하다고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하시는데
나는 어떤 눈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