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시다시피 대림 시기는 둘로 나뉩니다.
17일 이전의 대림 제1시기와 이후의 대림 제2시기입니다.
그리고 성탄절 1주일을 앞둔 17일부터는 주님께서 오실 것을 준비한 사람들을,
멀리서부터 가까운 사람까지 얘기하는데 그 첫날인 오늘은 족보상의 인물들을
열거하며 멀리서부터 준비한 사람들을 전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기도는 이렇게 오늘 전례의 의미를 전합니다.
“인류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느님,
평생 동정녀의 태중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게 하셨으니,
인성을 받아들이신 외아드님을 통하여 저희도 그 신성에 참여하게 하소서.”
그러니까 오늘 복음과 본기도를 엮으면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시고 인간의 족보 안으로 들어오심으로
우리 인간도 그분의 신성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족보를 보면서 든 느낌은 족보의 인물들이 대부분 추하고 더럽다는,
그래서 주님께서 족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마치 똥물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뿐 아니라 이 세상이 하느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그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라 악취가 풀풀 나는 더러운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세상에 오신 것 자체가 똥물 속으로 들어오신 거지요.
그런데 누가 똥물에 들어간다면 왜 들어가겠습니까?
사랑 아닌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사랑이 아니라면 똥물에 들어갈 사람도 없고 이유도 없겠지요.
그리고 똥물에 보석이 있을 때 들어가겠지요.
그 보석을 건지러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사람을 보석같이 소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시어
우리 인간을 건지러 이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오신 것인데,
이것은 마치 사창가에 팔린 딸을 찾으러 사창가에 들어가고,
조직 폭력배에 끌려간 아들을 찾으러 조폭들 가운데 들어가는 부모 같습니다.
부모에게 자녀는 아무리 더럽혀졌어도 소중하고,
자기가 낳은 아이를 자기가 깨끗하게 할 책임이 있듯이
하느님께서도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이 아무리 더러워도
그것을 다시 깨끗하게 해야 할 책임,
당신의 창조를 회복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그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창조의 회복이고,
그러니까 본래 보물인 우리 인간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 때의 그 고귀함으로 되돌리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구하러 오신 주님의 손길을 우리는 뿌리치지만 않으면 됩니다.
뿌리치지 않고 마주 잡기만 하면 우리는 구출되고
인성 안에 갇혀 있는 우리의 신성이 회복됩니다.
오늘 본기도의 기도처럼 인성을 받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성에 참여하려는 갈망을 가지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