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복음에서는 드물게 게라사의 더러운 영들 얘기를 오늘 자세히 묘사합니다.
그만큼 마르코복음이 이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들여 묘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저도 이 얘기를 중요시하여 자주 강의와 강론 때 다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여러 번 강의와 강론을 했음에도
더러운 영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얘기했을 뿐
더러운 영들이 돼지와 함께 물에 빠진 뒤 어떻게 됐을지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돼지와 함께 물에 빠진 더러운 영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돼지와 같이 죽었을까요?
돼지 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그렇게라도 게라사 지방을 떠나지 않으려고 한 거지요.
그러니 세상을 그리고 자기가 살던 곳을 더럽게 집착하는 영이 더러운 영이잖아요?
그리고 더러운 영이란 죽었어도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가려 하지 않고
세상과 자기 살던 곳을 맴도는 존재이잖습니까?
우리 민속 신앙에서 이런 영들은 극락왕생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돈다고도 하는데
하느님 나라에도 가지 못하고 자기 지역에서도 쫓겨났으니 구천을 떠돌까요?
저도 이런 영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영적인 존재는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죽은 사람의 영은 훌훌 날아서 하느님께 가는 것이 최선이고,
하느님께 아직 갈 수 없다면 연옥이나 지옥에 머물든지 해야 하는데
더러운 영은 이 지구를 떠나지 못하고
지구에서도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는 존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고
교회의 공식 가르침도 저의 주장도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추측을 하는 근거는 게라사의 더러운 영들이
돼지 속에서라도 자기 지방에 남게 해달라고 한 점이지요.
저는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인데
제 친구가 서른셋에 죽고 허무감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2년 정도 지난 어느 날 꿈에 친구가 나타난 적이 있습니다.
얼굴이 천사처럼 환하게 밝아서 꿈에서 깼을 때 저는 친구가
하느님께 갔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저는 그때 친구를 떠나보냈습니다.
더 이상 제 친구로 붙잡고 있지 않게 되었고,
하느님의 아들로 보내준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어머니는 돌아가신 뒤 꿈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인간적으로는 꿈에라도 어머니 얼굴 보고 싶은데 보여주시지 않으니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지만, 영적으로 생각하면
어머니께서 오늘 복음의 더러운 영들처럼 이 세상이나 저의 곁을
집착하지 않고 하느님께로 가신 표시라고 생각되어 위안을 삼습니다.
사실 저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그리고 보고 싶을 때마다
어머니를 내 어머니가 아니라 하느님의 딸로 보내드리자고 하지만
영적으로는 그러면서도 인간적으로는 아직도 보고 싶은 애착이 남아있습니다.
떠나지 못하고 떠나보내지 못하는
우리 인간의 집착과 애착을 돌아보는 오늘 우리이고,
이런 면에서 나도 더러운 영의 존재는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신부님, 저도 이제부터 부모님이 꿈에 안 보이는 것은 천상에 계시기 때문이라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위안을 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