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오늘 주님 말씀에 따르면
잃어야 할 목숨과 구해야 할 목숨이 있고,
죽어야 할 목숨과 살아야 할 목숨이 있고,
이 세상에서 사는 목숨과 하느님과 함께 사는 목숨이 있는가 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언제 들어도 어렵고
지금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르려면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앞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주님을 따라야만 목숨을 구하게 되는데
주님을 따르는 데 자기나 자기 목숨이 방해된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주님을 따라가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느님 아버지께 갈 것이고, 지옥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로 가겠지요.
그리고 그래야 우리는 목숨을 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영원한 생명이고 잃지 말아야 할 목숨이며,
반대로 사라질 이 세상의 어차피 없어질 목숨은 잃어야 할 목숨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어려운 것이 실은 뜻이 아니라 실천일 것입니다.
저세상에서 살기 위해 이 세상에서 죽는 것,
저세상의 삶을 이미 여기서 살기 위해 이 세상에서 죽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심리학에서 정신 건강을 간단하게 테스트하는 것이 있답니다.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 두 가지 음식이 있고 둘 다 먹어야 하는데
무엇을 먼저 먹느냐에 따라 정신이 건강하고 약한 것이 갈린답니다.
맛없는 것을 먼저 먹는 사람이 정신이 건강하고
그 반대의 사람은 정신이 약한 사람이라고 한답니다.
정신이 건강하다고나 할까 강하다고나 할까 그런 사람은
현재의 싫은 것이나 고통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곧 미래의 기쁨이나 행복을 위해 견디는 힘이 강한 사람이라는 거지요.
그도 그럴 것이,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내 알 수 있습니다.
미성숙하고 정신력이 약한 사람은 조그만 고통도 견디지 못하고,
나중에 어떻게 되건 당장 좋은 것만 하려고 합니다.
어제는 미사 가방, 수도복, 컴퓨터 등이 들어서 무거운 가방을 메고 귀가하는데,
무겁고 힘들어도 그리고 무릎이 안 좋아도, 건강을 위해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목적인, 힘든 것을 피하지 않고 이겨내는 내가 되기 위해 계단을 걸어 올랐습니다.
그런데 젊은이 거의 모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이렇게 쉽게 그리고 단숨에 위로 오르던 젊은이들이
인생길에서 수없이 만나는 어려움을 어떻게 맞닥뜨리고 견디어내며,
또 어떻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지 노파심에서 염려가 되었습니다.
목표를 아예 또는 이내 포기하지 않을까?
목표를 향해 가되, 가는 것이 너무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가 쌓여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으로 건강을 잃지 않을까?
이런 남 걱정을 하다가 이내 저를 돌아봤습니다.
그들보다 조금 더 정신적으로 강하고 그래서 당장의 고통을 그들보다
조금 더 잘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숙제를 미루고 당장 노는 것을 선택하는 아이처럼,
내가 죽는 것은 뒤로 미루고 당장 즐거운 것만 쫓는 나는 아닌지.
내일과 모레 강론을 올리지 않겠습니다.
글피 월요일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