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세리를 비교하면서 말씀하십니다.
비교의 기준은 의로움입니다.
바리사이는 자신 스스로 의롭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은 죄를 짓지 않으며
오히려 계명을 잘 지킨다고
하느님께 이야기합니다.
반면 세리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 자비를 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세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선, 의로움은
내가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의롭다고 말해주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자신 스스로를 의롭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교만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보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의롭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바리사이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자신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만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이야기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바라봅니다.
나를 보지 않으면
우리는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세세히 들여다 보면서
평가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나를 돌아보라고 하면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잘잘못의 기준으로 봐야 하는 것처럼
듣습니다.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보고 싶은 모습만 보거나
아예 자신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나를 돌아보는 것을
반성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다보니
딱히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무엇인가 잘못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점점 판단하게 됩니다.
점점 우리는 자신을 보지 않거나
자신을 극단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세리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을 낮추는 표현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혹한 심판자가 되어
내리는 판결이 아닙니다.
자신을 가혹하게 심판하는 사람은
하느님도 가혹한 심판자로 생각해서
자비를 청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하느님께 자비를 청할 수 있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을 하느님께서도 판단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부활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우리는 고해 성사에 임하게 됩니다.
고해가 부담이 되는 이유는
우리의 나약함을
꺼내 놓아야 하는 것에도 있지만
내가 나 자신의 심판자로
행동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극단적인 죄인으로
몰고 갈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조금은 편한하게 꺼내 놓을 수 있고
그것으로 하느님과 더 깊은 친교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