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죽임을 당할 때가 점점 다가옴을 복음은 얘기하고,
독서는 주님께서 왜 죽임당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얘기합니다.
죽임당하는 이유가 주님께 전혀 있지 않고,
죽이려는 자들에게 있음을 독서와 복음이 얘기하는데
주님께서 그들의 죄와 악을 들춰내시기 때문이고,
그들의 죄악을 들춰내시는 주님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두 부류의 사람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주님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임을 알면서도
자기의 죄악을 감추기 위해서 죽이는 정말 나쁜 자들과
자기의 죄악을 들춰내는 사람이 주님인 줄 모르고 죽이는 보통 사람들.
정말 나쁜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 옆에 있으면 자기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저절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좋은 사람을 제거하거나 적어도 자기 옆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어둠은 빛을 싫어하고 빛을 싫어하는 것이, 곧 어둠이라고 요한복음이 얘기하듯
악인은 선인을 싫어하기 마련이고, 선인을 싫어하고 죽이는 자가 곧 악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악인이고 그가 선인임을 알고도 선인을 악인으로 몰아서 죽입니다.
그런데 선인을 죽이는 사람도 악인인데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을 죽이는 자들은 얼마나 악한 자들입니까?
그런데 이 정도로 악하지 않지만, 보통의 우리도 악한 구석이 있고,
신앙인이라고 하는 우리에게도 악한 구석이 어느 정도 다 있습니다.
나의 죄와 악을 드러나게 하는 사람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악입니다.
다시 말해서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자기가 죄인이고 악인이라는 것을 모르기에
자기의 죄와 악을 드러나게 하는 사람을
하느님께서 보낸 사람인 것을 몰라 보고
그를 악인이라고 하는 죄와 악입니다.
이런 사람의 경우는 그래도,
자기가 죄와 악을 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의 죄악을 드러나게 한 사람이 악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회개할 것이고,
이런 사람이라야 비로소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대 지도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주님이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온 분이라는 것은 알지만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것은 모르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에 주님께서는 그들은 알면서도 모른다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세상 것은 알지만, 천상 것은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이런 악이 있음을 오늘 인정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