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기 위해 받아 먹어야 하는 빵은
예수님의 살입니다.
이 단어 '살'은
요한복음이 시작하면서도 이야기되었습니다.
말씀이 살이 된 것은
우리 가운데 머물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이제 그 머무름은
함께 거주하는 것을 넘어서서
온전한 일치를 향해 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살을 먹는다에 사용된 동사는
씹어 먹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양식이 되는 빵을 먹듯이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입니다.
내가 먹은 빵이 나의 살이 되는 것처럼
내가 받아 모신 예수님의 살이
나의 살이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느님과 온전한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육화는
우리와의 일치를 목표로 합니다.
배고픔에 빵이 필요하듯
인간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려
하느님께서 다가오십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들에
우리가 좌절하지 않도록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오십니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시면서
사랑해 주시기 위해서
조건 없이 당신의 살을 내어주십니다.
그 사랑을
조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저런 기준을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의 살을 받아 모실 자격이 없다고
말합니다.
받아 모실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라면
더 좋겠지만
엄격한 기준을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받아 모시기를 거부하는 결과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건 없이 주시는 것을
조건 없이 받아 모실 때
그 사랑이 우리를 키우고
우리가 더 잘 받아 모실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인 성체와 성혈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받아모시도록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십니다.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하느님께
우리도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