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한 땅이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탈출기 3,5) 우리가 사는 곳이 거룩한 곳이며 우리가 만나는 관계들이 거룩한 땅입니다. 관계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탱하는 신발을 벗어야 겸손하게 섬길 수 있습니다. 신발로 상징되는 자기 중심성과 자만심을 포기하는 것이 신발을 벗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관계 속에 선이 흐르게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안전장치는 신발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관계 안에서 발견하기까지 우리의 관계 안에 선이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는 일, 안전을 하느님께 맡기고 복음적 불안정을 선택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달리 말하면 나를 상처받기 쉬운 상태로 너에게 내어놓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곧 가난과 겸손을 관계 안에 적용하여 내려가고, 내려놓고, 허용하고 놓아주는 일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름에 바탕을 둔 영성은 첫째가 되려는 마음, 올바른 사람, 구원받은 사람, 남보다 뛰어난 사람, 남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을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 위에 올려놓고서는 그분을 따를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신발 벗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보호해 줄 보호막이 필요하기에 하느님의 현존보다 자신의 안전이 우선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돌봐 줄 여력이 전혀 없습니다. 신발을 신은 상태로는 예수님처럼 “제가 원하는 대로 하시지 말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마태26,39) 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이 머무는 곳이 거룩한 곳입니다. 관계 안에 선이 흘러가는 거기에 하느님의 현존이 있기에 우리가 사는 곳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의 일상 안에서 가난하고 겸손하게 서로의 필요성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우선으로 하는 신발을 벗어야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