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위대해 보이고,
갈수록 사랑하게 되고,
사랑을 넘어 존경하게 되는 성인 중의 한 분이 막달레나 성녀입니다.
복음의 여인 중에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 막달레나 성녀는 두 분을 합친 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막달레나 성녀처럼 완벽하게 주님을 사랑한 분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다고 바오로 사도가
얘기한 바 있는데 막달레나 성녀가 바로 이런 사랑의 증인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위험입니까? 칼입니까?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하느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막달레나 성녀는 일곱 마귀에 들렸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출된 바 있습니다.
일곱 마귀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그를 갈라놓거나 떼어놓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받았기에 그의 사랑 또한 어떠한 것에 의해서도 포기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후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 무리에 들었으며,
그래서 죽음도 삶도 주님께 대한 그의 사랑을 막지 못했고,
그래서 그는 부활의 첫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리아처럼 주님 사랑에 머물러있지만 않았습니다.
마리아의 언니 마르타처럼 행동주의자였습니다.
오늘 대체 독서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라고
바오로 사도가 얘기하는데 이 말씀대로 성녀는
다그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주님 발치에 가만 있을 수 없었고,
그래서 주님 부활의 첫 번째 목격자요 증거자로 분주히 움직입니다.
먼저 사도들에게 가 주님 부활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녀를 “사도들을 위한 사도”로 칭송합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주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만 확인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찾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한 것에 비해
성녀는 오늘 아가의 여인처럼 사랑을 찾아 나섰고 마침내 만났습니다.
이런 성녀를 오늘 감사송은 아름답게 노래하는데
성녀는 진정 이런 칭송을 받을 만한 분이십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사랑하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주님을 뵈었으며,
무덤에 묻히신 주님을 찾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경배하였나이다.”
칭송만 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칭송한다는 것은 닮겠다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닮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