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마침내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성막이 세워졌다.”
전에 저의 형제들이 무전 순례라고 해야 할 것을 무전여행이라고 말하곤 해서
제가 듣기에 불편했고 경우에 따라 제가 바꿔 써야 한다고 잔소리하곤 했지요.
그렇다면 여행과 순례의 차이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쉽게 구분하면 여행이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놀러 가는 것이라면,
순례는 거룩한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는 곳, 곧 목적지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냐, 아니면 하느님이 계신 곳이냐,
그것이 여행과 순례를 가르는 기준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아니 계신 곳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아니 계신다고 생각하는 곳에도 실은 하느님이 계시지요.
그러므로 여기에 하느님이 계신다고 믿고
거기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성당을 순례하고 성지를 순례해도
하느님 현존의식이 없다면 말짱 꽝이지요.
왜 이런 얘기를 길게 했느냐 하면
저의 이번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오늘 탈출기에 비추어 반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겉의 형식은 다 잘 갖췄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의 발자취와 우리 신앙 선조들의 교우촌을 방문했습니다.
매일 출발하면서 그날의 독서와 복음을 읽고 묵상하며 걸었습니다.
걷는 동안 제가 맨 뒤에 가며 고백성사나 영적 대화를 나눴습니다.
문제는 의식의 문제입니다.
오늘 탈출기를 보면 구름 기둥과 성막이 나오는데
저희는 구름 기둥을 따르고 성막을 정성껏 세우려는 의식이 부족했습니다.
구름 기둥을 따르려고 하기보다 스마트폰의 길 안내에 더 의존했습니다.
그러다가 잘 알려지지 않은 ‘한실 성지’라는 곳을
스마트폰의 길 안내를 받아 가다가 아주 혼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 혼자 속으로 이 점을 반성하였지요.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지 않았던 점 말입니다.
다음으로 저희는 내 천막만 신경 썼지,
성막을 치는 것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먹고 마시고 내 육신 편히 쉴 공간이 마련된 것에 흡족하여
하느님 계실 곳을 우리 가운데 마련하려는 의식이 부족했습니다.
여기서 반성이 되는 것이,
흡족할 때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세상 것에 흡족할 때 우리는 천상 것에 부족하게 됩니다.
이것을 어제 마지막 나눔 때 반성하였지만 오늘 또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