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적 단순성의 힘을 깨닫기
우리는 생애 전반에서 그리고 하루 생활에서도 수많은 활동들을 하고 다방면으로 이끌림을 경험하는데, 그 가운데서 우리 대부분은 단순성을 향한 자연스런 갈망을 지닌다. 개인의 영적 양성에서 이 단순한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단순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나 우리 문화가 말하는 것과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단순성에 관한 세속적인 책들은 활동들을 줄이거나 불필요한 것들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축소에 집중한다. 이것은 우리의 분산한 삶을 바라보며 내린 결과 중 하나일 수 있으며, 영적 단순성은 삶에 대한 우리의 내적 자세를 다듬는 것이며 하느님 눈에 본질적인 것을 끌어안는 마음을 지니게 한다. 진정한 단순성과 이 단순성의 열매인 자유는 하느님의 뜻(theonomy)과 우리의 뜻(autonomy)가 교차할 때 생긴다.
승려이자 과학자인 마티외 리카르는 그의 책 행복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삶의 정수를 얻기 위해 자신의 삶을 단순화하는 것은 확실히 추구하는 바를 얻게 한다. 단순화는 진실로 이로운 것을 포기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진실로 중요한 것을 찾는 것이다.”
한번은 내가 태국과 일본에서 짧은 강연을 할 때인데, 방콕에서 나는 작은 사무실에서 메리놀 선교사 신부와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 신부는 태국에서 전쟁으로 피폐한 인접국 난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통솔하였다. 그 지역 권력가들은 종종 난민들을 잔인하게 대했다. 일부는 마침내 탈출했지만, 그들이 경험한 트라우마는 깊은 상처를 남겨, 치유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경우에는 영구적인 심리적 육체적 손상으로 완전한 치유가 불가능하기도 했다.
내가 그 신부와 앉아있을 때, 나는 홀 아래에 있는 공동방으로 이어진 작은 창문에 나타난 휘둥그레한 눈으로 바라보는 한 얼굴에 시선이 갔다. 그 얼굴은 나타나자마자 사라졌다. 나는 어리둥절하며 그 신부를 보았다. 그 신부는 웃으며 말했다. “그는 우리와 함께 사는 이입니다. 태국에서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이를 말할 때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온전하지는 않아(Not full)’ 라고 말합니다.”
그 신부는 계속 말했는데, “그 거주자가 처음 왔을 때, 그 거주자가 경험하는 모든 어려움에 저는 압도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와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직원들에게 물었어요. 이 사람은 꽤 문제가 있는데, 우리가 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 직원들은 어리둥절하였고, 그들 중 하나가 말했어요. ‘물론 사랑해야죠!’ 이 대답이 나를 환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해결안은 영적인 마음에서 자라난 단순성에서 나온 것이며, 내가 때때로 얼마나 나의 길을 잃어버리는지를 바라보도록 가르칩니다.”
개인적 영적 양성은 단 하나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이 사랑은 하느님, 다른 이,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동시에 확장된다. 만약 이것이 진리로 보이지 않는다면, 양성의 전체 과정은 올바른 기교나 법을 추구하는 것으로 격하된다. 한 신학자가 그리스도는 우리를 종교로 부르지 않았고 삶으로 불렀다고 말하였다. 우리가 이것을 알 때, 우리 영적 양성의 지침은 꽤 단순하고 강력하다. 즉, 하느님을 깊게 사랑하라. 네가 다른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그리고 너 자신을 잘 돌보아라.
이 세 요청을 마음에 간직한다면, 우리는 덕을 익히는 공부에서 올바른 균형과 목적을 지니며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첨언) 여러분은 어떤 모습을 ‘단순성’, ‘단순하다’라고 생각합니까? 프란치스코 초기 형제들 중에 단순한 요한이라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프란치스코처럼 하느님의 사람이 되고 싶어, 프란치스코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가 뒷짐을 지고 걸으면 그도 뒷짐을 지고 걸었고, 프란치스코가 침을 뱉으면 그 또한 침을 뱉었습니다. 이를 알아차린 프란치스코는 요한 형제의 마음은 이해하였지만, 자기 행동을 그대로 흉내내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프란치스코는 순종에 대한 권고를 하면서, 단순히 장상의 말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순종이라기보다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하느님의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 참된 순종이라 말하였습니다. 자기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선한 생각을, 보상이나 인정받으려 하는 마음과 섞지 않고, 단순하게 행하는 것이 순종인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함 안에서 하느님의 초대와 자기의 응답을 바라보는 것 또한 하느님 세계에 젖어드는 길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무식한 단순성이 아닌 지혜와 연결되는 단순성을 강조하고, 지혜를 정화할 수 있는 단순성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여왕이신 지혜여, 인사드립니다. 주님께서 당신이 자매인 거룩하고 순수한 단순성과 함께 당신을 지켜 주시기를! … 순수하고 거룩한 단순성은 이 세상의 모든 지혜와 육신의 지혜를 부끄럽게 합니다.”(덕들에게 바치는 인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