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변모 축일에 저는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다락방에 숨어있는 제자 공동체를 생각합니다.
이들은 왜 다른 제자들처럼 예루살렘을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고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어서 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좌절하고 절망한 사람의 목적 없이 떠난 것입니다.
토마 사도 축일 때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토마 사도도 어쩌면 절망하고 제자단을 떠난 것이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열 사도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고,
그럴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제 생각에 그것은 세 사도 곧 베드로, 야고보, 요한 사도가
다른 제자들을 떠나지 말라고 붙잡고 설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세 사도가 이럴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주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봤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 감사송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뽑힌 증인들 앞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어
제자들 마음속에서 십자가의 걸림돌을 없애 주셨으며,
머리이신 당신에게서 신비롭게 빛난 그 영광이,
당신 몸인 교회 안에도 가득 차리라는 것을 보여주셨나이다.”
그리고 두 번째 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우리도 그 거룩한 산에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하늘에서 들려온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로써 우리에게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날이 밝아 오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듯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기와 두 제자가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고,
그래서 증인들로서 다른 제자들의 마음에서 십자가의 걸림돌을 제거했다고
감사송은 노래합니다.
십자가는 걸림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걸림돌이라면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고,
주님을 따라 하느님께 가는 것을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겠지요.
십자가에 걸려 넘어진 다음 다시 일어서지 않는다면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넘어진 다음 마음을 접지 않고 다시 일어서기만 한다면
그리고 걸림돌이었던 십자가를 오히려 디딤돌 삼기로 마음먹는다면
십자가는 우리를 부활에로 인도하는 다리가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넘어졌을 때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믿음과 희망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활 영광의 시작이라는 믿음과 희망,
그것을 우리가 지녀야 하는데 주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이
이 믿음과 희망의 근거라고 감사송은 노래하고
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어둠 속에서 비치는 빛이라고 합니다.
절망 가운데서 희망을 가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제는 젊은 형제들과 우리 안에 희망이 있겠냐는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둠을 보면 희망이 없습니다.
사람을 보면 희망이 없습니다.
어둠만 보면 희망이 없지만 어둠 속에 있는 희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며,
사람만 보면 희망이 없지만 인간의 어둠 속에서 오히려 하느님의 희망을 보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가 희망의 증인이 되어 전체가 희망을 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 그 한 사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되라고
타볼산으로 초대받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