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이 말씀은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자를 아내로 삼은 것 때문에
모세의 친형제들인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며 한 말이고,
이 때문에 아론과 미리암은 꾸지람을 듣고 미리암은 큰 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말 자체는 일리가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세뿐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분이고,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며 스쳐 가는 바람을 통해서도 말씀하시지요.
그래서 이 말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의도의 문제일 것입니다.
동족을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해 비방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구약의 하느님은 종종 동족 결혼을 원하시는 것으로 구약이 얘기하지만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은 안 된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이방 여인들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구원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 중에 이방 여인들이 있지요.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뽑으시고,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선민의식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 선민의식이라는 것이 배타적인 성격을 띠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오늘 아론과 미리암은 배타적인 성격을 띠고 있고 그것 때문에 모세는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비방하기에 벌을 받은 것일 겁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어지는 말씀이 모세의 겸손을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라는 사람은 매우 겸손하였다.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다.”
모세는 겸손했고 이들은 교만했기에 벌을 받은 것입니다.
모세의 잘못을 구실로 자기들이 모세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모세에게 반기를 든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교만 때문에 모세에게 반기를 들 채비가 되어있는데
모세의 결혼을 구실이나 빌미 삼은 것일 겁니다.
이것을 잘 드러내는 번역이 영어 번역입니다.
“Miriam and Aaron spoke against Moses on the pretext
of the marriage he had contracted with a Cushite woman.”
우리도 교만하면 다른 사람 특히 지도자를 제칠 이유를 상대에게서 찾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의 흠집을 찾아내어 지도자에서 끌어내리고
자기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뽑은 지도자를 교만 때문에 비방하고
지도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세에게 반기를 든 정도가 아니라
모세를 뽑으신 하느님께 반기를 든 것입니다.
모세가 겸손했다는 것은 모세가 늘 하느님 앞에 있었다는 얘기이고,
그들이 교만했다는 것은 그들은 늘 모세 앞에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프란치스코는 겸손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지요.
“사람은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이지 그 이상이 아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여겨져도 하느님 앞에 있는 것 이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보지 않고 사람을 보기에 종종 교만합니다.
그리고 교만하기에 어떻게든지 남의 잘못을 찾아내고,
잘못이 없으면 흠집을 내서라도 끌어내리려고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나도 보고 이웃도 보는 나인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