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축일의 복음은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났을 때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덕담하자 이에 마리아가 하느님을 찬미하는 내용입니다.
엘리사벳의 덕담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여기서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여인 가운데 가장 복되다고 하는데,
마리아가 여인 가운데 가장 복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제 생각에 이 세상에서는 마리아만큼 불행한 여인이 없는데
어째서 마리아가 여인 가운데서 가장 복되다고 하는 겁니까?
마리아가 가장 행복한 이유는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저세상에서고,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듯 저세상으로 바로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리아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였기 때문이고,
아들의 Passio(수난)를 Compassio(동병상련)했기 때문이며,
아들의 수난에 동병상련했기에 아들을 따라 하늘로 올려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마리아의 축일은 오늘 축일뿐 아니라 모두 아들을 따르는 축일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축일이 십자가 현양 축일과 성모 통고 축일이고,
그리고 예수 승천 축일과 성모 승천 축일입니다.
사실 두 분뿐 아니라 아들과 엄마의 관계가 대개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 아들이 가는 곳은 엄마가 가는 곳이다가
나이를 먹으면 그것이 바뀌어 아들이 가는 곳이 엄마가 가는 곳이 됩니다.
예수님과 마리아도 그랬을 겁니다.
그러다가 예루살렘 성전 방문을 기점으로 바뀌기 시작했을 겁니다.
어린 예수가 부모를 따르지 않고 성전에 홀로 남은 사건 말입니다.
왜 부모를 따르지 않았느냐고 어머니 마리아가 나무라자
당돌하게도 아들 예수가 오히려 어머니 마리아를 나무라는데,
그것은 당신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을 모르셨냐는 거였고,
이것을 마리아는 마음속에 깊이 그리고 오래 간직하였다는 거였지요.
이것이 인간적으로는 사춘기 현상 곧 부모로부터의 독립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신앙적으로는 이제 아들이 더 이상 인간 부모의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이때부터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고,
아들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가는 길을 끝까지 따릅니다.
그리스도의 길이란 타볼산에서 내려와 해골산으로 오른 십자가 길이고,
이 세상을 떠나 저세상으로 옮아가는 나그넷길이요 승천의 길입니다.
오늘 감사송은 마리아가 이 길을 충실히 간 우리의 모범이라고 찬미합니다.
“동정 마리아께서는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나그넷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에게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나이다.”
우리가 이 축일을 성대하게 지내는 이유는 우리가 가야 할 곳을
마리아가 우리에게 선명히 보여주셨기 때문이라는 얘기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리아처럼 나그넷길을 잘 가
‘직 천당’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것이 오늘 본기도에 잘 나와 있습니다.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이시며 성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하늘로 부르시어
그 육신과 영혼이 천상 영광을 누리게 하셨으니
저희도 언제나 하느님을 그리워하며 그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그리워하는 것,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늘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자주 얘기하듯 ‘땅에서 하늘을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