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투스는 미, 아름다움을 통해 덕을 향하는 삶을 제시한다. 스코투스는 우리에게는 두가지 성향이 있다고 말한다. 나의 행복을 향하는 끌림과 올바름을 향하는 끌림. 올바름을 향하는 끌림은 우리 안에 내재하는 사랑을 소중하게 여기고 실천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나의 행복을 향하는 끌림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스코투스는 이 둘 중 하나를 무시하지 않고 이 둘 가운데에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아름다운 삶, 행복한 삶,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의 행복 추구와 올바름 추구 사이에 조화의 길은 있는가? 이 둘은 표면적으로 반대적인 것을 말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경우, 나는 나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을 무시하거나 외면한다. 그 예로,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할 경우 나는 공부를 하지 않거나 부모님을 돕지 않는다. 반대로, 내가 요구되어지는 바를 할 때, 나는 나의 욕구를 포기하거나 억누른다. 우리가 자동차를 몰 때, 우리는 내가 달리고 싶은 대로 달리지 않고 정해진 속도를 지키고 신호를 지킨다. 표면적으로, 나의 행복 추구와 올바름 추구는 반대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둘은 깊은 차원에서 결코 반대적이지 않다. 우리가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이 둘이 조화를 이룬다. 이 조화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한지를 프란치스코의 삶을 통해 알아보자.
프란치스코는 회개 전에도 자선을 베푸는 것을 좋아했었다. 가난한 이들이 아버지의 가게를 찾아왔을 때, 그는 그들을 돕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하루는, 그가 바빠 하느님의 사랑으로 애긍을 청하는 이를 그냥 돌려보냈을 때, 곧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를 찾아가 그를 돕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였다.(익명 4; 세동료 30) 프란치스코가 회개 중에 있을 때, 그는 자선을 베푸는 것에서 더 큰 기쁨을 얻는다.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포기하고 아시시로 돌아왔들 때, 그는 "가난한 이들을 보거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의 마음은 애긍을 베풀 태세로 부풀어 있었다." (세동료 9) 프란치스코가 로마 순례를 했을 때에는, 거지와 옷을 바꾸어 있고 성 베드로 성당의 계단에서 구걸도 하기도 하였다.(세동료 10; 2첼라노 8) 이러한 일련의 삶이 계기가 되어 그와 나병환자와의 만남이 이루어 진다.
프란치스코는 나병환자를 보는 것을 매우 싫어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나병환자를 만났을 때 그는 자선을 베풀고 손에 친구를 하였다. 그리고 그는 유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올 때에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유언 2-3) 프란치스코는 하기 싫은 일, 올바름을 추구하면서, 그 안에서 감미로움, 행복을 맛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얻던 행복보다 더 깊은 행복을 다른 이를 사랑하면서 얻은 것이다. 이 행복이 프란치스코가 계속 덕들을 추구하도록 한다.
프란치스코는 이후 홀로 은수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나환자들이 사는 곳에 가서 나환자들을 돕곤 하였다. 그리고 베르나르도 형제가 그를 찾아왔을 때, 베르나르도 형제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이 삶의 역설을 맛보고 살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후, 작은 형제로 삶을 살고자 하는 형제들에게도 같은 길을 제시한다.
"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1221년 회칙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