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주일에 우리의 전례는 당연히
마태오 복음의 마지막인 제자들 파견 얘기를 듣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시면서
당신의 평생 과업인 복음 선포를 제자들에게 넘기시는 겁니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마태오 복음에서 제자들 파견은 두 단계입니다.
10장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먼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파견하십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이렇게 다른 민족에게는 가지 말라던 주님께서 이제 마지막에는
모든 민족들에게 가라고 파견하시는 건데 왜 그러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오늘 첫째 독서 이사야서 말씀처럼 두 단계의 구도 때문입니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으로 몰려오며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라고 할 때가 올 것이니
“야곱의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라며 야곱의 집안을 독려합니다.
그러니까 1단계는 야곱의 집안이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는 것이고,
그다음에는 야곱의 집안이 그렇게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모든 민족들이 보고 주님의 집이 있는 산으로 따라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 이사야 예언자의 독려를 야곱의 집안인 이스라엘이 귀 기울여 들었다면
지금 하마스와 전쟁하듯 이웃 민족과 나라들과 전쟁을 벌이지 않음은 물론이고
주님의 말씀처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족속은 이제나저제나
그 역할은 못 하면서 선민이라고 자처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는 너희가 진정한 빛과 소금이 되라고,
너희가 야곱의 집안이 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며 파견하시고,
오늘의 우리에게도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시며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빛과 소금이 되는 것,
그것은 그리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복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남을 위한 큰 희생이 아닙니다.
행복해서 남 줍니까?
남 주고 자기는 불행한 겁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의 선포자가 되는 것을 주저한다면
그것은 복음의 선포를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거나
우리가 복음으로 행복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복음으로 진정 행복하고 넘치도록 행복하다면
우리는 나만 행복한 것이 미안하고
그가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것이고,
그래서 나의 행복을 나누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나의 행복과 평안에 안주하지 않고,
지금 전쟁 중인 나라들의 그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뻗칠 것이고 적어도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더 큰 행복과 더 큰 사랑 때문에 그들에게 달려가지 않더라도
우리가 복음으로 진정 행복하고 조그만 관심과 사랑이 있다면
지금 여기서라도 민족들의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사랑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