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촉진자',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교부들의 말씀 묵상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루카 20,34-36)
부활한 이들은 혼인하지 않는다
주님께서 사두가이들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마태 22,29-30; 마르 12,24-
25)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권능은 위대합니다.
어째서 그들은 장가도 안 들고 시집도 안 갈까요? 그들은 두 번 다시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한 세대가 사라지면 다른 세대가 그 뒤를 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상에는 소멸이라는 것이 아예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땅에 계실 때 유
한한 육신을 입으셨기에 다른 사람들처럼 어린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 단계를 거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부활하신 뒤로 하늘에서 계속 나이를 먹고 늙어 가신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그들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고 하십니다. 일반 유대인들의 생각과 사두가이들의 주장을 다 부정하신 것이지요. 일
반 유대인들은 죽은 이들이 부활한다고 믿기는 했지만 부활 이후의 인간의 상태에 대하여 매우 조잡하고 육적인 관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우리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들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살아나며 하늘의 천사들과 같아진다는 말씀을 주님한테서 들었습니다. 주님은 몸소 부활하심으로써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다시 살아날지 보여 주셨지요.
-아우구스티누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엑카르트의 영성에 영향을 준 신학들
3. 켈트 신비 전통과 동방 그리스도교:
켈트 그리스도교는 서방의 영성신학보다는 동방의 영성신학에 더 많이 의지했다. 창조와 창조성을 강조하고, 신화를 강조하고, 원죄를 경시하고, 우주적 은총을 인식하고, 부정의 길을 용이하게 한 것으로 볼 때, 엑카르트 역시 이와 동일한 동방 그리스도교의 영성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하겠다. 그의 서방 출신의 창조영성 선배들, 곧 (동방에서 태어나 서방에서 신학을 연구했던) 이레네우스, 베네딕투스, 카시아누스, 요한네스 스코푸스도 그러했다. 실제로. 오늘날까지 엑카르트의 신학을 널리 알린 가장 중요한 저작은 동방교회의 신학자 블라디미르 로스키의 저작이다.
엑카르트는 성서적이면서도 켈트풍 창조 중심의 영성 전통에 충실했다.
그러므로 나는 액카르트가 프란치스코회의 가장 뛰어난 영성신학자 자격도 갖추지 않았나 생각한다. 암스트롱은 프란치스코회의 2세대 수도승이자 프란치스코의 전기를 쓴 첼라노의 토마스와 보나벤투라가 프란치스코의 자연 중심 영성에다 플라톤의 이원론을 투사했으며, 결국에는 소위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이원론적인 영성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설명한다. 암스트롱은 프란치스코가 플라돈의 이원론, 곧 육체와 영혼을 가르고, 물질과 정신을 가르고, 여성과 남성을 가르고, 상상력과 기도를 가르고, 정치와 신비주의를 가르는 이원론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6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1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히브 10-13장 / 야고 1-5장
<생태 문화 주간>
생태 지향 :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개인 혹은 공동체 차원에서 먼저 하루를 정해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토요일 이웃 종교의 날
이름 없는 하느님, 김경재
4. 이슬람교에서 나타나는 유일신 신앙
예언자 무하마드와 계시 경전 <꾸란>
'이슬람'이라는 아랍어는 ‘복종, 순'종 을 의미하며, 무하마드 자신이 채택한 용어인데, 유일신 하나님 알라가 자기에게 계시해 준 말씀과, 그 내용을 계시하신 유일신 하나님의 의지와 뜻에 자기 스스로부터 전적인 헌신과 ‘복종'을 다짐한다는 표현에서 나왔다. 이슬람교의 가장 핵심적인 신앙 고백을 ‘샤하다'라 부르는데, 그 내용은 ‘신은 오직 한 분이시며 무하마드는 신의 사도이시다'라는 뜻이다.
이슬람교에 귀의하는 신앙인을 무슬림이라고 부른다. 무슬림은 좁은 의미로서는 현재 역사적 종교인 ‘이슬람교 신자'를 의미하지만, 이슬람교 경전 <꾸란>에 나타난 본래적인 의미는 유일신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살아가는 참된 신앙인을 지칭한다. 아브라함, 모세, 구약의 예언자들, 예수, 무하마드가 모두 무슬림이라고 그들은 본다.
역사적 종교로서의 이슬람교는 6세기 아라비아반도에서 무하마드를 예언자로 택하여 자기를 계시히신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절대신 ‘알라' 하나님의 자기 계시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알라'(Allah)라는 아랍어는 모세 종교에서의 ‘야훼'(Yaweh) 같은 특별하게 게시된 유일신에 대한 고유 명사가 아니라, 일빈적으로 아랍인들이 사용하는 신(神)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마치 한민족에게 오랜 세월 동안 ‘하눌님' 신앙이 있어 왔고, 사람들이 결정적인 일을 당할 때는 ‘하느님 맙소사' 라고 하느님을 부르듯이 아라비아 여러 부족들은 ‘알라' 라고 불러 왔다.
한민족이 지고신으로서 하느님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현실 종교 생활에서는 좀더 구체적인 다양한 잡신, 잡령을 숭앙하는 다신적 경향을 보인 것처럼, 이슬람교가 출현하기 전까지 아라비아반도에서 삶을 영위하던 아랍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역사적 종교 이슬람교의 절대 유일신 ‘알라'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한민족의 종교사를 예로 들어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