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의 독서와 복음의 구조는 이사야 독서의 예언이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실현되었다는 복음의 구조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 구조입니다.
오늘 이사야서는 –하게 되리라는 예언의 연속입니다.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너희의 눈이 스승을 뵙게 되리라.”
“뒤에서 하시는 말씀을 너희 귀로 듣게 되리라.”
오늘 복음은 이사야서의 예언대로 주님께서
병자와 가난한 자의 기를 살려주시고 고쳐주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셨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님은 기가 꺾인 양들의 목자입니다.
목자인 주님께서 오시기 전엔 목자가 없어서
양들의 기가 꺾여 있었는데 이들에게 주님은 참 목자이십니다.
참 목자는 우선 기가 꺾인 양들을 가엾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사랑은 가엾은 마음이 드는 것이 시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크고 진실할수록 가엾지 않은데도 괜히 가엾게 봅니다.
그러니 아플 때는 얼마나 더 가엾게 여기고 돌봐주고 치료해주겠습니까?
아니, 병이 나기도 전에 그리고 몸의 병처럼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병과
기색을 살펴 기가 꺾여 있는지까지 살펴 몸과 마음의 병을 미리 예방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짓 목자들은 어떻겠습니까?
기를 살리기는커녕 오히려 기를 꺾을 것이고,
그러니 가엾은 마음은커녕 잔인한 마음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사랑이 없을수록 그의 고통보다는 잘못을 보기 마련이고,
그러니 그런 그가 가엾기보다 밉거나 꼴 보기 싫을 것이며,
꼴 보기 싫으니 내 앞에서 꺼지라고 공동체에서 나가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목자에게는 흩어진 양들이 잃은 양이 아니라 길 잃은 양입니다.
공동체가 품지 못해 잃어버린 양이 아니라
양이 못돼처먹어서 무리에서 이탈하고 그래서 길을 잃어버린 양이며
그래서 전혀 가엾지 않고 오히려 괘씸하여 찾지 않고 내버려 둡니다.
이렇게 해서 잃은 양을 찾으려고 참 목자이신 주님께서
하늘에서 오신 것이 육화/성탄이고 찾아다니신 것이 복음 선포 여행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당신만 찾아 돌아다니시지 않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복음 선포자를 모으시고 파견도 하시는데
우리도 여기서 제외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자문하게 됩니다.
너는 그런 능력도 없고 열성도 없고 자격도 없다고 하시며
주님께서 우리를 이 모집과 파견에서 제외하시면 좋을까요?
반대로 주님은 우리를 복음 선포자로 부르시고 파견하려고 하시는데
우리가 그것 싫고 귀찮다고 거부하지는 않는가요?
우리에게 그들은 잃은 양인가, 길 잃은 양인가?
이런 성찰과 반성을 하게 되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