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숨어 계신 하느님, 숨어 사는 우리>
오늘 복음은 기도와 자선과 단식을 할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왼손의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마치 수 십 년간 자기의 선행을 완벽하게 숨긴 사람처럼
우리의 선행을 적극적으로 숨기라는 뜻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은 적극적으로 숨기라는 뜻이라기보다는
드러내지 말라는 뜻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숨기는 것이나 드러내지 않는 것 모두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다는 면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지만
숨기는 것, 그것도 적극적으로 숨기는 건 자기 선행을 의식하는 것인데 비해
드러내지 않음은 선행을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는 거며,
그렇게 함은 자기 선행을 의식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면에서 다릅니다.
의식한다는 것은 선행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표시지요.
선행에 있어서 가장 완벽한 가난은
그 선행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그래서 그 선행을 드러내지 않음은 물로 의식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늘 숨어계시는 하느님과
숨는 우리의 삶에 저의 묵상의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먼저 숨어계시는 하느님에 대해서 묵상하는데
저는 숨어계시는 하느님이라고 해서
하느님께서 일부로 당신을 숨기신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도록 일부러 당신을 감추시고 숨기시는 게 아니라
우리의 선행 뒤에 당신의 선업을 숨기시고,
우리의 사랑 뒤에 당신의 사랑을 숨기시며,
더 근원적으로 우리 안에 당신 존재를 숨기십니다.
모든 선의 근원이신 분이 우리 선 안에 숨어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주님의 가난과 겸손과 사랑의 무화이시며
그렇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당신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선행이 당신의 구원업적이 되게 하시며,
우리의 사랑이 당신의 사랑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 안에 숨어 살아야 합니다.
거리의 여자, 거리의 남자처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거리에서 기도하거나 장바닥에서 선행을 하지 않고
철저히 하느님 안에 숨고, 무엇이든 하느님 안에서 합니다.
하여 자기의 선행을 드러내지 않고 하느님 업적을 드러내며,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도록 자기 사랑을 숨겨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앞서 얘기했듯 감추고 숨기는 게 아니라
그 모든 선과 선행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내 것이 아니기에 하느님의 것이라고 돌려드리는 겁니다.
프란치스코는 얘기합니다.
“모든 선을 소유하시는 지극히 높으신 주 하느님께 언행으로 돌려드리고”
“주님께서 자기를 통하여 말씀해주시고 이루어주시는 선으로
자신을 더 높이려 하지 않는 종은 복됩니다.
주 하느님께 자기의 것을 바쳐드리기를 원하기보다
자기 이웃에게 받기를 더 원하는 사람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