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촉진자',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2월 28일 수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마태 20,223)
저희는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대답한 것은 그들의 마음이 담대해서라기보다는 시련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모르는 사람에게 전쟁은 신나는 일인 것처렴, 겪어 본 적 없는 이들에게 수난과 죽
음이라는 시련은 별것 아닌 일처럼 여겨집니다.
주님께서도 수난의 시련에 드셨을 때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39) 하고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이 죽음의 시련이 어떤 것인 줄 알았더라면 어떻게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겠습니까? 수난의 괴로움은 실로 큽니다. 그러나 죽음은 훨씬 더 무서운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 미완성 작품-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3 피조물은 하느님이다
피조물이 하느님을 드러내는 곳에서 하느님은 하느님이 되신다
사람들이 창조계를 마주하여 이해하는 세 단계의 의식을 위와 같이 분석해 본 결과. 우리는 엑카르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엑카르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의 삶이 아니라, 그 삶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만 음식을 먹는) 문제에서 벗어나, 감사와 신비로 나아가야 한다. 쉬르만이 지적한 대로, 엑카르트는 “통찰력(seeing)의 교육을 목표로 삼는다.” 겉사람의 피상적인 삶만을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이승에서 영원을 맛보지 못할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할 것이며, 항상 죽음의 접근을 물리치려고만 할 것이다. 그는 아름다움이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결코 직접 체험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가장 깊은 속사람(deepest self)과 끊임없이 대면하는 사람의 의식은 힘이 넘친다. 그러한 사람만이 만물을 하느님에게로 되돌릴 수 있다. 그러한 사람만이 신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창조계를 하나 되게 하고, 혼돈을 질서 정연한 우주로 만드는 것이다. 나만이 모든 피조물을 그들의 존재로부터 나의 이해 안으로 들여올 수 있고, 내 안에서 그들을 하나 되게 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이라면 하느님이 아는 것을 알 것이고, 하느님 안에서 만물이 하나이며,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128)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2월 4주간
<금주간 성서읽기>마태 9-12장
<생태 영성 주간> 고요와 침묵과 절식을 통한 단순한 삶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3기 : 1050 ∼ 1300년
중세 중기 교회의 전성
제 2절: 그레고리오 개혁과 성직 서임권 논쟁
해결의 시도: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러한 권력투쟁에 대하여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 시대의 사상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당시는 그리스도만이 그리스도교 세계의 주인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루가 복음 22장 38절에서, 그리스도가 두 자루의 칼로써 상징되는 두 권력을 세계의 통치를 위하여 정해 놓았는데. 그 하나인 세속적인 칼은 황제의 손에, 또 다른 영적인 칼은 교황의 손에 있다고 추론하였다. 반면에 그레고리오 시대의 교회법 학자와 신학자들은 이 이론을 오로지 교황에게만 관련시켜 새로운 해석을 하였다. 즉, 두 자루의 칼은 다만 교회를 위하여 존재한다. 영적인 칼은 교회가 행사하고, 세속적인 것은 황제가 교회를 위하여, 또 교회의 이름으로 행사하도룩 교회가 황제에게 빌려 주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교회의 파문을 영적인 칼로 간주하였다.
이와 같은 일방적인 교회적인 관념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교적 서구의 세계질서를 유럽의 모든 국가에 대한 교황의 완전한 상위 봉토 지배체제로 개조하려는 시도에 이르기까지는, 짧은 한걸음에 불과하였다. 물론 그것은 필연적으로 황제권과의 충돌로 이끌었다. 옛 제국사상을 소생시킨 프리드리히 적발제는 교황의 우세에 대하여 성공적으로 저항하였다. 그러나 강력한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전 유럽에 걸쳐 교황적 봉건국가 체제룰 바탕으로 일종의 교황의 세계 제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하였다. 슈타우펜 왕가의 황제는 이 다툼에서 졌다. 그러나 슈타우펜 왕조의 멸망 후 얼마 안되어 교황의 세계 제국도 붕괴하였다. 되돌아볼 때 그것이 교회와 교회의 영적 사명을 위해 축복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