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예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인데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것에 대해
질투하는 것인지
그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보다
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질투의 마음은
그에게 있는 능력에 초점을 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말은 반대로
나에게 없는 능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질투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질투하면서 남을 비난하는 것보다
자신의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노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능력을 키울 수도 없습니다.
또한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에
그 노력은 멈추지 않고
만족을 모릅니다.
그러다보면 몸에 무리가 와서
오히려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지고 오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노력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내가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부탁을 하고 그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됩니다.
남에게 의지해서 사는 것이라
비겁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자신이 하지 못하면서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추는 것이
더 비겁한 행동입니다.
능력이 없는 부분을 노력해서 극복하기보다는
상대방을 미움과 시기의 대상으로 만들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함께 그를 미워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모든 능력을 키우는 것은 힘들지만
받아들이는 능력 하나만큼은
잘 키울 수 있습니다.
그것을 키우는 첫 번째 방법은
내가 잘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잘 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청할 수 있고
받을 수 있습니다.
즉 받아들이는 능력은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받아들임은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을 넘어서서
내 곁의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확장됩니다.
그렇게 공동체가 건강하게 됩니다.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들 때
상대방에게 있는 능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없는 능력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능력을 키우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인정하는 노력이 먼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능력은
받아들이는 능력임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