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님께서 가지고 계심을
이제 우리가 알게 해 주겠다는 주님의 말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제>라는 말씀은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해도 된다는,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땅에서>는 하늘에서만 하던 것을
이제 땅에서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둘을 합치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지금까지는 하늘에만 있었는데
이제부터 이 권한이 땅에서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의 얘기는 이런 배경이 있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람에게는 없고
오직 하느님께만 있다고 생각하는 율법학자들,
병을 죄에 대한 하느님의 벌로 생각하는 율법학자들은
주님께서 병자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병자를 낫게 하시는 주님을
이해할 수 없었고 당연히 용납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용서의 권한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리신 겁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렇게 생각지 않는 사람, 그러니까 아직까지도
죄 용서의 권한은 하느님께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바세바와 간음을 하고 그 남편을 죽인 다음 그 죄가 드러나자
다윗이 우리야에게가 아니라 주님께 죄를 지었다고 한 것처럼
인간의 죄는 다 주님께 죄를 지은 것이고
따라서 용서의 권한도 하느님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인간에게도 용서할 권한을 주셨기에
하느님께만 용서의 권한이 있다는 것,
인간에게는 용서의 권한이 없다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고,
베드로에게는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고 하셨으며,
그리고 오늘 복음은 사람들에게 죄를 용서할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군중이 찬양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용서를 하늘에 묶어 두었던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주님께서는 하늘의 용서를 땅의 용서로 끌어내리신 것입니다.
동학의 창시자 최 재우가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한 것처럼
주님께서도 사람의 용서가 곧 하느님의 용서라고 하신 거고,
우리가 용서할 때 하느님께서도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 가운데는 하느님을 핑계로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코르반”이라고 하며,
곧 하느님께 바친다고 하면서 부모에게 해야 할 효도를 아니 하고,
죄를 짓고 난 뒤 하느님께 용서 받으면 된다고 하며
사람과 화해하고, 사람의 용서를 받으려고 하지 않고,
하느님과 대화한다고 하며, 곧 기도한다고 하며
사람과는 관계를 끊고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죄이고, 그것이 바로 병입니다.
수평의 단절이 수직의 단절이 되는 그 단절이 바로 죄이고
이 단절이 병이 된다고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