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었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었다.”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사도들을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모든 행위의 주어가 다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사도들을 가까이 부르시고,
주님께서 열둘을 사도로 세우시고,
주님께서 그들을 함께 지내고 하시고,
주님께서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케 하십니다.
그저께 저는 몇몇 분들과 나들이를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저는 운전을 하고 그분들은 심심풀이를 이것저것 하셨는데,
퀴즈 게임도 하였습니다.
그제 서품식 때 주례자가 강론한 것을 재치 있게 활용하여
유언에서 프란치스코가 “주께서 ---하셨다.”는 얘기를
몇 번 했는지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유언은 크게 두 부분, 과거를 회상하는 전반부와
앞으로 이렇게 살라고 당부하는 후반부로 나뉩니다.
그런데 과거를 회상하며 프란치스코는 일곱 번에 걸쳐
주님께서 몸소 자기에게 무엇, 무엇을 해주셨다고 합니다.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은 다 주님께서 해주신 거라는 거지요.
그런데 주님께서 해주신 것이 비단 일곱 가지 뿐이겠습니까?
그의 모든 것, 다 주님께서 해주신 것이지만
아마 우리의 성사가 일곱 가지이듯 일곱 가지를 꼽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성사가 왜 일곱 가지뿐입니까?
하느님께서 그 일에 함께 계시면 다 성사이고
하느님께서 그 일을 통하여 발생하면 다 성사이지요.
결혼만 하느님께서 축복하시고 다른 것은 축복치 않으시는가요?
성체 성사에만 주님이 계시고 우리의 일상 식사에는 아니 계시나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은 다 하느님께서 해주신 것이고,
그렇게 믿으면 다 성삽니다.
바야흐로 인사이동의 때가 다가오는데
나의 이동이 관구장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때
나는 관구장이 아니라 하느님의 파견을 받은 것이고
나의 이동은 인사人事가 아니고 성사聖事입니다.
그러므로 성사는 늘 하느님 현존체험인 겁니다.
현존現存이란 현재 존재한다는 말의 준말이지요.
지나고 난 뒤 그것이 하느님의 파견이었음을 깨달으면
파견된 그 순간은 성사가 아니라 인사였을 거고,
나는 그 인사이동에 불만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성인과 보통 사람의 차이는 아마 이것일 겁니다.
보통 사람은 지나고 난 뒤에야 그것이 하느님 뜻이었음을 깨닫는,
즉 회고적 하느님 체험을 한다면
성인은 모든 일이 다 하느님 뜻임을 현재적으로 받아들이는,
즉 현재적 하느님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나의 모든 일에 함께 계시며
나의 모든 일을 축복하시고 이끌어주십니다.
믿고 맡기면 숫하게 성사가 발생하는 오늘이 될 겁니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었다.”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사도들을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모든 행위의 주어가 다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사도들을 가까이 부르시고,
주님께서 열둘을 사도로 세우시고,
주님께서 그들을 함께 지내고 하시고,
주님께서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케 하십니다.
그저께 저는 몇몇 분들과 나들이를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저는 운전을 하고 그분들은 심심풀이를 이것저것 하셨는데,
퀴즈 게임도 하였습니다.
그제 서품식 때 주례자가 강론한 것을 재치 있게 활용하여
유언에서 프란치스코가 “주께서 ---하셨다.”는 얘기를
몇 번 했는지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유언은 크게 두 부분, 과거를 회상하는 전반부와
앞으로 이렇게 살라고 당부하는 후반부로 나뉩니다.
그런데 과거를 회상하며 프란치스코는 일곱 번에 걸쳐
주님께서 몸소 자기에게 무엇, 무엇을 해주셨다고 합니다.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은 다 주님께서 해주신 거라는 거지요.
그런데 주님께서 해주신 것이 비단 일곱 가지 뿐이겠습니까?
그의 모든 것, 다 주님께서 해주신 것이지만
아마 우리의 성사가 일곱 가지이듯 일곱 가지를 꼽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성사가 왜 일곱 가지뿐입니까?
하느님께서 그 일에 함께 계시면 다 성사이고
하느님께서 그 일을 통하여 발생하면 다 성사이지요.
결혼만 하느님께서 축복하시고 다른 것은 축복치 않으시는가요?
성체 성사에만 주님이 계시고 우리의 일상 식사에는 아니 계시나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은 다 하느님께서 해주신 것이고,
그렇게 믿으면 다 성삽니다.
바야흐로 인사이동의 때가 다가오는데
나의 이동이 관구장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때
나는 관구장이 아니라 하느님의 파견을 받은 것이고
나의 이동은 인사人事가 아니고 성사聖事입니다.
그러므로 성사는 늘 하느님 현존체험인 겁니다.
현존現存이란 현재 존재한다는 말의 준말이지요.
지나고 난 뒤 그것이 하느님의 파견이었음을 깨달으면
파견된 그 순간은 성사가 아니라 인사였을 거고,
나는 그 인사이동에 불만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성인과 보통 사람의 차이는 아마 이것일 겁니다.
보통 사람은 지나고 난 뒤에야 그것이 하느님 뜻이었음을 깨닫는,
즉 회고적 하느님 체험을 한다면
성인은 모든 일이 다 하느님 뜻임을 현재적으로 받아들이는,
즉 현재적 하느님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나의 모든 일에 함께 계시며
나의 모든 일을 축복하시고 이끌어주십니다.
믿고 맡기면 숫하게 성사가 발생하는 오늘이 될 겁니다.
한 해가 되도록 합니다.
늘 저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우리 주님께 찬미 영광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