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깨어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깨어 있음은
우선 준비를 가리킵니다.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던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미리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즉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그 날과 그 시간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즉 그 날과 그 시간은 우리가 준비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기름이 없어서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흔히 종말의 시간으로 해석합니다.
종말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아직 먼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지금 당장 종말을 준비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종말은 심판과 연결되는데
심판이라고 하면
우리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그 날과 그 시간을
나의 모습이, 감추어 두고 숨겨 왔던 내 모습이
드러나는 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그 마음을 언제까지나
감출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잘 감추어 왔던 것들이
의외의 순간에
생각도 못했던 상황에서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 상황에서 잘 준비한다는 것은
언제 드러날까 노심초사하면서
드러나지 않게
더 잘 감추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을 잘 맞이한다는 것은
평소에 나의 삶을, 나의 모습을
정직하게 사는 것입니다.
물론 온전히 다 드러내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리고 드러낼 필요도 없습니다.
남에게 드러내느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이
단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본래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하는 말과 행동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전혀 다른 것을 꺼내놓지만
여기에서의 어려움은
시간이 지나서 언젠가
그것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했던 노력이
다 헛수고가 됩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
나의 민낯이 드러날지 모릅니다.
온전히 솔직하게 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솔직하려고 노력할 떄
민낯이 드러나는 상황은
그렇게 당황스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니 언제 그것이 드러날까하는 걱정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