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형제들이다.”
저는 지금 유치원 책임도 맡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유치원 개학을 하면서
새로 입학하는 아이들의 학부모에게 며칠에 걸쳐 유치원 소개를 했는데
그중 하루, 학부모에게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건 개신교건 믿는 사람들이 아닌,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처음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하느님” 소리 빼고 강의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형제님”, “자매님” 소리도 빼고 말을 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녔습니다.
앞에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는데 강의 시작 때 “형제님”이라고 하려다
“어르신”이라고 하였는데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었고
그렇게 부른 것이 맞았나 하는 생각이 나중에까지 들었습니다.
왜 내가 형제라는 호칭을 자신 있게 쓰지 못했을까 반성을 하면서
앞으로 이 형제라는 호칭을 그냥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유의미하게 써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떤 유의미입니까?
첫째로 오늘 복음 말씀처럼 한 분 아버지의 같은 형제라는 뜻으로.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형제라고 할 때마다 하늘 아버지를 늘 염두에 두라는 겁니다.
형제란 한 아버지의 같은 자식이니 말입니다.
아버지는 형제를 이루는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을 형제라고 하는 것은
피가 아니라 한 아버지의 한 성령으로 형제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가 아는 분에게 들은 얘깁니다.
원양 어업을 하는, 배를 몇 척 가지고 계신 분인데
고기를 잡으러 남미 쪽으로 가던 중에 배가 고장이 나
어느 나라에 우선 기항을 하고 거기서 배를 고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고칠 수 있는 걸 한 달이 가도 못 고쳐서
속을 부글부글 끓고 있는 중에 주일이 되어 성당에 갔답니다.
기도를 하는데 푸념 식으로 “하느님, 이 족속은 왜 이 모양입니까?
빨리 배를 고쳐야 고기를 잡는데 이렇게 늘어터지니!
빨리 배를 고치게 해주세요.” 뭐 이런 식으로 기도를 했답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다가 문득 자신이 남의 나라에서
한국말로 기도를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리고 이내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보고 깨달은 것이 있었답니다.
하느님께는 어디서 무슨 말로 기도하든 상관이 없고,
모든 민족이 같은 당신의 자녀인데
인간이 민족을 구별하고 말을 구별하며
심지어는 차별을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자기가 그 사람들을 무진장 무시했음을 깨달았고,
다음 날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청했더니
사람들이 일사천리로 배를 고치더랍니다.
진정 같은 아버지 하느님 안에서 사람들을 보지 않으면
진정한 형제애와 형제 관계는 있을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얘깁니다.
둘째로 윗사람은 아버지 하느님 한 분 뿐이시라는 뜻으로.
윗사람은 아버지 하느님 한 분 뿐이기에
인간은 누구나 같은 형제로 높낮이와 우열이 없습니다.
돈과 권력으로 누구 위에 있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사랑으로도 그리고 영적 권위로도 누구 위에 있지 않는 겁니다.
제가 제일 조심해야 할 점이 바로 이 점입니다.
아무도 아버지 소리를 듣지 말라고 하시는데 저의 호칭은 신부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하긴 하는데 존경하는 사랑을 하지 못하고
위에서 베풀고, 하사하고, 큰 선심을 쓰는 듯한 사랑을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라는 말을 쓸 때마다 받드는 사랑은 못할지라도
형제로서 사랑하리라는 마음을 다지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유치원 책임도 맡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유치원 개학을 하면서
새로 입학하는 아이들의 학부모에게 며칠에 걸쳐 유치원 소개를 했는데
그중 하루, 학부모에게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건 개신교건 믿는 사람들이 아닌,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처음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하느님” 소리 빼고 강의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형제님”, “자매님” 소리도 빼고 말을 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녔습니다.
앞에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는데 강의 시작 때 “형제님”이라고 하려다
“어르신”이라고 하였는데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었고
그렇게 부른 것이 맞았나 하는 생각이 나중에까지 들었습니다.
왜 내가 형제라는 호칭을 자신 있게 쓰지 못했을까 반성을 하면서
앞으로 이 형제라는 호칭을 그냥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유의미하게 써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떤 유의미입니까?
첫째로 오늘 복음 말씀처럼 한 분 아버지의 같은 형제라는 뜻으로.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형제라고 할 때마다 하늘 아버지를 늘 염두에 두라는 겁니다.
형제란 한 아버지의 같은 자식이니 말입니다.
아버지는 형제를 이루는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을 형제라고 하는 것은
피가 아니라 한 아버지의 한 성령으로 형제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가 아는 분에게 들은 얘깁니다.
원양 어업을 하는, 배를 몇 척 가지고 계신 분인데
고기를 잡으러 남미 쪽으로 가던 중에 배가 고장이 나
어느 나라에 우선 기항을 하고 거기서 배를 고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고칠 수 있는 걸 한 달이 가도 못 고쳐서
속을 부글부글 끓고 있는 중에 주일이 되어 성당에 갔답니다.
기도를 하는데 푸념 식으로 “하느님, 이 족속은 왜 이 모양입니까?
빨리 배를 고쳐야 고기를 잡는데 이렇게 늘어터지니!
빨리 배를 고치게 해주세요.” 뭐 이런 식으로 기도를 했답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다가 문득 자신이 남의 나라에서
한국말로 기도를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리고 이내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보고 깨달은 것이 있었답니다.
하느님께는 어디서 무슨 말로 기도하든 상관이 없고,
모든 민족이 같은 당신의 자녀인데
인간이 민족을 구별하고 말을 구별하며
심지어는 차별을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자기가 그 사람들을 무진장 무시했음을 깨달았고,
다음 날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청했더니
사람들이 일사천리로 배를 고치더랍니다.
진정 같은 아버지 하느님 안에서 사람들을 보지 않으면
진정한 형제애와 형제 관계는 있을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얘깁니다.
둘째로 윗사람은 아버지 하느님 한 분 뿐이시라는 뜻으로.
윗사람은 아버지 하느님 한 분 뿐이기에
인간은 누구나 같은 형제로 높낮이와 우열이 없습니다.
돈과 권력으로 누구 위에 있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사랑으로도 그리고 영적 권위로도 누구 위에 있지 않는 겁니다.
제가 제일 조심해야 할 점이 바로 이 점입니다.
아무도 아버지 소리를 듣지 말라고 하시는데 저의 호칭은 신부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하긴 하는데 존경하는 사랑을 하지 못하고
위에서 베풀고, 하사하고, 큰 선심을 쓰는 듯한 사랑을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라는 말을 쓸 때마다 받드는 사랑은 못할지라도
형제로서 사랑하리라는 마음을 다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