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회심回心과 항심恒心
오늘의 1독서 탈출기를 보면
하느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려든 마음을 바꾸십니다.
말하자면 하느님의 회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하시겠습니까?
사람이 그런데 하느님도 그렇다고 의인화하는 거지요.
그리고 하느님을 이렇게 의인화하는 것은 우리도 하느님처럼
남에게 하려든 모진 마음을 인자한 마음으로 바꾸라는 뜻이겠지요.
그렇습니다. 회심이 필요한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인간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회심은 두 가지 형태입니다.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마음과 이웃에게로 돌아서는 마음입니다.
먼저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마음은 흔히 죄의 회개라고 말하는 거지요.
오늘 복음의 작은 아들처럼 아버지를 떠나 자기 좋을 대로 살다가
온갖 고통을 겪은 다음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발견하고 돌아서 가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다시 돌아가는 것, 다시 말해 품꾼으로라도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아들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웃에게로 돌아서는 마음은 모진 마음, 앙심을 푸는 것입니다.
이웃이 내게 지은 죄에 대해 벌하거나 사랑을 거두려던 마음을
복음의 아버지의 마음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항심과 일념의 주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은 조변석개가 아니라 항상 같은 마음이시고,
하느님께서는 생각이 복잡하지 않으시고 오직 일념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외풍을 타지 않으신다는 얘기지요.
하느님은 당신 사랑의 내적 이유에 따라 사랑하시지
뭔지 모르지만 당신을 위해 뭔가 바라며 사랑치 않으십니다.
내적 이유라는 것이 그러면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그런 관계성입니다.
우리 모든 존재는 다 그분 사랑에서 나왔고,
하여 우리 모든 존재는 다 그분의 것입니다.
오늘 탈출기를 보면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네 백성이라고 하시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고쳐 말합니다.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니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달라고 합니다.
그것은 복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길 잃은 양은 목자의 양이고,
잃었던 은전은 부인의 은전이며,
가출한 아들은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아무리 싫어하고 거부해도
아버지에게 아들은 아들이지 다른 존재일 수 없습니다.
하느님에게 우리는 그런 존재이고
그래서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무조건이고 무한 책임입니다.
우리 모든 죄의 원죄는 하느님께 있고,
그러기에 우리가 어떤 죄를 지어도 우리만 탓하실 수 없고,
우리의 죄에 따라 당신의 사랑이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죄를 짓고도 다 당신 탓이라고 우리가 뻣대지 않고
당신 사랑을 알고 당신께 돌아오기를 바라실 뿐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알아드리는 주일 하루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