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주었다.”
한 해의 풍성한 수확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한가위 명절에 듣는
오늘 요엘서, 주님이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주셨다는 말씀은
그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할 말씀입니다.
정의에 따라 하느님께서 가을비를 내려주신다니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개신교 번역은 적당히 주신다고 번역하고,
우리의 옛날 번역은 흠뻑 주신다고 번역했는데 어떤 뜻입니까?
우리의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주신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정의에 따라 주신다는 뜻입니까?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하느님의 계절 정의에 우리가 따른다면 곧 자연의 순리에 따른다면
그 정의에 따라 하느님께서 적절히 비를 주신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저의 이런 이해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 요엘서는 우리가 잘 아는 말씀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에 듣는 그 유명한 말씀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라는 말씀 말입니다.
그러니 오늘 정의에 따라 비를 주신다는 말씀은
마음을 찢는 회개를 너희가 하면 그 보상으로 하느님께서
적당한 비를 주시고 풍성한 수확을 하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요즘 한가위가 ‘가을 한가위’가 아니라 ‘여름 한가위’라고 합니다.
요즘 여러 곳 동유럽과 동남아시아에서 물난리가 났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적절히 비를 주신 것이 아닌데
우리가 하느님의 계절 정의에 따르지 않은 것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두 번째 독서는 또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일이 우리를 따라온다는 말입니다.
말장난 같지만 우리가 되어주는 그 ‘되’로 받는다는 말이고
그 되대로 된다는 말입니다.
자연도 사람도 하느님도 우리가 한 대로 또 그 ‘되’로 되돌려줍니다.
누구를 탓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되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요엘서가 말하는 ‘정의에 따라서’입니다.
그러니 올해 한가위에 내가 풍요롭지 못하다면 내 탓입니다.
그리고 내 인생의 끝이 빈손이라면
그것도 하느님 앞에서 빈손이라면 그것 또한 내 탓입니다.
그렇게 욕심을 부렸는데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빈손이라니!
마음을 욕으로 채우지 않고 사랑으로 채웠다면 풍요로울 텐데!
그래서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라는
오늘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는 한가위 명절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