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넷째 날: 과거 슬픔에 담긴 보석들
과거에 잠시 지나가듯 예상하지 않았던 슬픈 체험들이 당신 자신을 그리고 당신 삶을 보다 깊이 이해하도록 도왔던 일화들이 있는가? 그 일화들은 무엇이었는가? 이 이해가 지금 당신을 어떻게 돕고 있는가?
첨언) 프란치스코 회개 여정에서 슬픔은 큰 역할을 하였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갔던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서 자기 삶의 슬픔에 젖어들었습니다. 이 슬픔이 그에게 삶을 전환시키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슬픔에 잠기곤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이 그에게 슬픔으로 다가왔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삶에 담긴 사랑이 그에게 슬픔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 슬픔이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한걸음 한걸음 따르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형제들이 서약을 하는 순간들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서약을 했지만 일상을 살아가면서 서약의 삶을 살지 못하는 저와 형제들을 만납니다. 이런 순간 서약을 현재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실천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보여주기 힘들어하고 언제까지 사랑해야 하는지 어느 수준까지 사랑해야하는지 의문을 가지며 어둠에 젖어듭니다.
이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네요. 일상의 인생 속에서 우리는 정(양)과 반(음) 사이의 긴장이라는 사선을 살아갑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서 정(양) 반(음) 합의 사선이 이상이나 밝음으로 좀 더 기울 수 있고, 그렇지 않고 어둠이나 절망으로 좀 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선에 하느님의 손길이 있지 않나 싶네요. 이상과 밝음으로 이끄는 힘에만 하느님의 손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긴장 속에서 사선이 유지되도록, 우리가 살아가도록 하는 손길이 있습니다. 이 손길에 우리 마음을 좀 연다면, 절망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지 않나 싶네요. 이미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이 계시기에...
어머니의 역할과 어머니 됨의 차이가 있지 않나 싶네요.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나 또한 이 어머니성에 포함되시킨다면... 진정한 모성과 부성의 하느님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