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0일 연중 32주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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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0일 연중 32주일 강론
고도미니코 신부
오늘은 연중 제 32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시면서 봉헌의 진정한 의미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서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봉헌했는가를 먼저 성서적 배경을 통해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서에서 홀어미가 된(바룩 4,12-16) 불행의 전형적인 표상입니다(이사 47,9). 과부의 옷차림은(창세 38,14; 유딧 10,3) 두 가지 슬픔을 나타냅니다. 하나는 재혼을 하지 않는 자식에 대한 희망이 없는 것과 보호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고아나 이방인처럼 과부는 법을 통해 특별한 보호를 받았습니다(탈출 22,20-23; 신명 14,28-29; 24,17-22).
초대교회에서는 매일 예배에서 과부들에게 생활 필수품을 조달해주고 있었음을 사도행전은 전해줍니다(사도 6,1). 만일 과부들이 의지할 친척이 없어 홀로 지낼 경우 초대공동체는 신앙의 사명감을 갖고 참된 신앙심으로 과부들을 도와주었습니다(사도 9,36-39).
이러한 배경 위에 과부는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야 하기에 신앙공동체로부터 영적, 물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더욱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도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과부는 진정으로 마음에서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이 우러나왔고 십일조의 규정을 넘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과부의 헌금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헌금의 의미를 겸허히 성찰케 합니다. 헌금은 보통 자발적으로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에서는 하느님께 바치는 일체의 물적예물을 말합니다. 좁은 의미로는 주일이나 대축일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예식 중에 봉헌하는 돈입니다. 이 봉헌금은 교회의 봉직자, 각종 단체들의 활동, 교회의 관리와 운영, 신앙교육, 가난하고 헐벗고 물질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한 자선사업 등에 씌여집니다.
봉헌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보다도 우리를 축복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데 있습니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마태 6,21)는 주님의 말씀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재물이나 시간 봉헌을 통해 참된 봉헌의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한히 풍성하게 베푸시는 하느님께 대한 참된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올 때 아까워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기쁘게 헌금을 봉헌하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 우리가 교회에 바치는 교무금이나 헌금은 단순히 교회 유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기쁨과 감사의 결과로 나오는 자발적이고 순수한 신앙행위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무금이나 헌금은 하느님의 제단에 바치는 고귀하고 귀중한 삶의 결실의 선물이며 거저 받은 은총에 대해 감사하는 거룩한 의무이며 사랑의 행위입니다.
물, 공기, 온갖 종류의 과일과 곡식 등은 우리가 거저 받은 직접 피부로 느끼는 무상의 선물입니다. 이보다 더 큰 그분의 무상의 선물은 감사와 기쁨과 행복과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살도록 해 주시는데 있습니다. 이런 것을 깊이 인식하고 체험한 사람만이 복음에 나오는 과부처럼 받은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며 모든 것을 그분께 온전히 돌려 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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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1월 2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히브 2-9장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일요일 성체의 날
<세계 도처에 일어난 성체의 기적(마리아 헤젤러)>
란치아노(Lanciano)의 성변화 기적
아마도 750 년경에 일어난 일일 것이다. 정확한 날짜는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한 젊은 신부가 성 레곤찌아노(Legonzianano)에게 봉헌된 란치아노 성당에서 성찬식의 제물을 올리고 있었다 .
그가 축성할 때에 손에 들고 있던 한 조각의 빵이 실제로 신인(神人) 예수님의 살로 변하는지 또 성작에 든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피로 변하는지에 대해 늘 애매한 의심이 그의 영혼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그는 심한 놀라움에 사로잡혔고 영혼의 전율을 느꼈다. 즉 성반 위에 축성되어 놓여 있던 흰 성체가 그의 눈 앞에서 색깔이 변하기 시작하여 붉은색으로 변하면서 부풀어 올랐다.
금으로 된 작은 성반 위에 피묻은 살 한 점이 놓여 있었고 성작속에 든 붉은 피에 거품이 일었다. 신부는 눈물을 흘리면서 무릎을 꿇었고 그 옛날 성 토마스(St. Thomas)가 한 말과 같이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시여 ! " 라고 속삭였다. 그는 온 몸이 떨려서 더 이상 미사를 계속하여 끝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기적은 살이 담긴 성반과 성혈이 담긴 성작은 조심스레 보존되고 간직되어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란치아노의 기적은 영원불변의 기적이다. 그 축성된 성체는 훼손되지 않았고 오늘날까지 수백 년 동안 보존되어 남아 있다.
1970년에 란치아노의 대주교는 일단의 전문학자들에게 이 성스러운 유물에 대해 의학적인 조사를 하도록 지시했다. 그 연구결과는 다음의 첨부된 증거 기록 속에 있다.(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