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죄를 지으면 꾸짖고
회개하면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태오복음에도 있는데
두 복음이 조금은 다르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오복음에서는
꾸짖다가 아니라 타이르라는 표현으로 나오며
죄를 이야기하는 부분과 용서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바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즉 죄 이야기와 용서 이야기는
서로 다른 이야기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루카에서는
이 두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어 전해집니다.
두 이야기가 연결되는 것에서
죄와 용서가 선후관계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용서에 앞서서 죄를 꾸짖는 것이
먼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용서를 이야기하면서
잘못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덮는 것이
용서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을 언급하는 자체가
용서와 반대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잘못을 언급하는 것은
상대방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종종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
어떤 부분에서 실수했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덮기에 바쁘다보니
그 행동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죄를 꾸짖으라는 말씀은
심판자로서 그 죄를 비난하라는 것보다
상대방의 잘못을 정확하게 알려주라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사실 상대방의 모습을 함께 보아주는 것은
그 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이제 용서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반복해서 용서를 청하는 것이
뉘우치는 마음 없이
단순히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잘못의 반복이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것에서 온다고 생각한다면
용서의 반복된 청으로
자신을 알아갈 마음이 드러난다면
용서의 반복으로
오히려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