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오늘 복음에서 아홉 명의 유대인 나병 환자는
치유를 받고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고
주님께 감사하지도 않아 주님께서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고 한탄하십니다.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이 제겐 레오나르도, 너 어디에 있느냐?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거저 받는 것에 익숙하고,
거저 받는 것이 당연한 나는 아닐까 반성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저는 살아오면서 여러 번
그리고 근래에는 더 빈번하게 기적적인 일을 체험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하느님께서 해주신 거야 하고 제가 느낀다는 말입니다.
뭘 해야지 생각하면 누군가 그에 필요한 것을 보내주시는데
저는 그것이 그분이 보내주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해 보내주신 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전혀 못 느끼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손길을 전혀 못 느끼는 사람이 아니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도 또한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느끼고
너무 자주 느끼기에 익숙하고 당연한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사랑과 은총을 꿀꺽 삼키고는 마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내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돌아와서 감사드리지 않습니다.
성당으로 달려가 주님께 감사드리지 않습니다.
평양에다 종합 복지관 ‘평화 봉사소’를 세울 때,
그러니까 몇 년간의 아주 힘든 줄다리기가 끝나고 계약이 성사되었을 때,
그때는 그 소식을 듣고 성당으로 달려가 감사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 그것처럼 커다란 기적이 아닌,
작은 기적들을 수없이 체험하면서는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 된 것입니다.
태양이 뜨는 것이 익숙하고 당연한 것처럼,
태양 빛의 따스함을 감사하지 않고 누리는 것처럼.
그러고 보면 하느님 책임도 있습니다.
너무 무상으로 주시고,
너무 많이 주시고 늘 주시기에 그러는 것이니 말입니다.
은총을 꿀꺽하고 마는 것,
뇌물을 꿀꺽하고 마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저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