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0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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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말씀 묵상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루카 19,22-23)
하느님 말씀의 이자
하느님 말씀의 이자는 하느님 말씀이 삶과 행실 안에 자리 잡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산다면 주님께 이익을 남겨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나 다섯 탈렌트로 열 탈렌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
님께 이런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잘 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여러분은 주인한테 받은 돈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거나 ‘땅에’ 숨겨 두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하십시오. 주님께서 오시면 그런 자들이 어떤 처분을 받게 될지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오리게네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3
하느님 바깥에 있는 것은 무일 뿐이다
모든 이의 아버지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에페 4,6).
“하느님은 하나”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하나는 선과 진리보다도 깨끗합나다. 선과 진리는 무언가를 더하고, 생각을 더합니다. 생각이 떠오르면, 선과 진리는 그것을 더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당신 자신 안에 계실 때, 하나는 더하지 않습니다. 하나가 하느님에게서 흘러 나와서 아들과 성령 안으로 흘러 들어가기 전에는 말입니다. 현자는 “하나는 부정의 부정이다”라고 말합니다. 만일 내가 “하느님은 선하시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에게 무언가를 덧붙이는 짓이 될 것입니다. 하나는 부정의 부정, 거부의 거부입니다. 하나는 무슨 뜻입니까? 하나는 아무것도 덧붙여 지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깨끗하고, 아무것도 덧붙여지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때, 비로소 영혼은 신성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부정의 부정입니다. 모든 피조물 안에는 부정이 들어 있습니다. 피조물은 저마다 다른 피조물이기를 거부합니다. 한 천사는 다른 천사이기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안에는 부정의 부정이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하나이시며, 하느님의 바깥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하기에, 하느님은 모든 타자를 거부하십나다. 하느님과 그분의 신성 안에는 모든 피조물이 들어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것은 풍부함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모든 신성의 아버지이십니다. 신성에서는 아무것도 흘러 나오지 않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에게 무언가를 덧붙이지 않을 때, 예컨대 하느님에게 선을 덧붙이지 않을 때, 비로소 나는 그분을 어느 정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을 어느 정도 안다고 해도, 이것은 그분을 그분 아닌 것으로 안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것마저 버려야만 합니다. 하느님은 하나이십니다. 그분은 부정의 부정이십니다. (282)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1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히브 10-13장 / 야고 1-5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3기 : 1050 ∼ 1300년
중세 중기 교회의 전성
제 9절: 인노첸시오 3세부터 보니파시오 8세까지의 교황직
인노첸시오 3세:
그래서 그는 1198년의 이중 선거가 있은 후, 독일의 왕위 계승 씨움에 개입하였다. 그는 선거 자체에 대한 승인이 아니라 후보자들의 도덕적인 자격에 대한 판단만을 자기의 권리로 요구하였다. 그는 우선 슈타우펜 왕가에 속한 슈바벤의 필립을 거부하였다. 왜냐하면 그를 폭력자로 칸주하고 또한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제국에 병합하는 슈타우펜 왕가의 계획 자체를 배척해야 하고 위험스럽고 불법적인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필립이 자신의 대립 후보자인 오토 4세에게 승리한 후 중용을 보이고 시칠리아 정책에 관해서 상응한 보증을 주었을 때, 인노첸시오는 즉시 그와 강화를 채결활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펼립이 암살된(1208) 후 오토 4세가 제국에서 승인을 얻고 또 마찬가지로 양보할 용의가 있음을 보이자 인노첸시오는 그를 황제로 대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1209). 그러나 오토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1210년에 슈타우펜 왕가의 시칠리아 정책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자 교황의 실망은 그만큼 컸다. 교황은 이 “불의” 때문에 그의 제위권을 빼앗고, 그 사이에 어른이 된 프리드리히 2세를 그와 대치시켰다. 교황은 이미 그전에 프리드리히로 하여금 시철리아를 독일 왕국에 통합하려는 시도를 결코 하지 않겠다는 선서에 의한 보증을 하도록 하였다.
교황이 독일 황제의 남부 이탈리아 정책에 그러한 평가를 내리게 한 원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문제는 결코 순수한 영토가 아니고, 전 교회와 관련되고 따라서 보편적인 것이었다. 시칠리아를 독일 제국에 병합하게 되면, 그것은 교황을 제국에 종속된 주교로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한 교황에게서 보편적인 제권에 대한 자립적인 중요성을 뺏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형적인 서구의 이원론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인노첸시오는 교황령의 독립과 주권이 교황에게 필요한 자유를 보증할 경우에만, 교황직이 보편적인 사명을 다할 수 았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