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를 고쳐주라고 보내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길을 떠날 때 아무 것도 지니지 마라.’”
오늘의 복음에 비추어 저를 성찰하였습니다.
우선 저는 길 떠나는 사람인가, 아니면 안주하는 사람인가?
외양적으로는 제가 안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지런히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니 말입니다.
그제는 상설 고백 성사 때문에, 어제는 수녀원 고백성사 때문에,
오늘은 회의 때문에 전국적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저는 저의 이런 분주한 돌아다님을 얕잡아서 싸돌아다닌다고 합니다.
분명 놀러 다니는 것이 아닌데 왜 싸돌아다닌다고 하는 걸까요?
오늘 복음에 비춰볼 때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주님께서 보내시어 파견되어 간다는 그런 의식이 결여되어 있고,
복음을 선포하겠다거나 치유를 하겠다는 열망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저를 보고 싸돌아다닌다고 하는 것은
일이나 친교 등의 이유로 그냥저냥 돌아다니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비록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 어디를 간다 하더라도
주님으로부터 파견되어 간다는 의식이 없이,
하느님의 사랑이 되어 사람들에게 간다는 의식 없이 가는 걸 뜻하는 거지요.
둘째로 나는 다닐 때 무엇을 지니고 다니나 오늘 말씀에 비춰 성찰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다닐 때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셨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파견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힘과 권한을 주셨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그러니 제자들은 마귀와 질병에 대한 힘과 권한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놀러 가는 것이라면 노는데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가야겠지만
영육의 병을 고치러 가는 것이기에 영적인 힘과 권한을 지니고 가야하지요.
그러나 내게 어떻게 그런 힘과 권한이 있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힘과 권한은 주님께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영육의 병을 고치러 가려는 의지와
그에 필요한 것을 주시리라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니 힘과 믿음 외에 우리가 지녀야 할 또 다른 것이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사실 이 믿음이 영적인 힘과 권한을 지닐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먹고, 입고, 자는 현실 문제에서 무소유를 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영적으로는 풍요하게, 현실적으로 가난하게 살 수 있게 하고
또 하나 부수적으로 가난하지만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합니다.
아니, 가난하기에 자유롭게 살게 합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는 것일 뿐 아니라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