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토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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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말씀 묵상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루카 20,34-36)
성인들은 하느님의 자녀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봅시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육체의 욕정을 쫓아 살아기는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자식을 낳기 위해 혼인을 한다. 영예롭게 선택된 삶을 훌륭하게 이어 간 사람들, 영광스러운 부활을
맞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보다 훨씬 높은 삶으로 다시 살게될 것이다. 그들은 이미 하느님 곁으로 간 성인들에게 어울리는 삶을 살 것이다. 그들은 천사들과 같으며,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그들에게는 육체의 정욕이 모두 사라지고 관능적인 쾌락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까닭에 거룩한 천사들처럼, 거룩한 영에게 어울리는 영적 방식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경배한다. 천사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영광을 누릴 자격을 얻은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3
하느님 바깥에 있는 것은 무일 뿐이다
모든 이의 아버지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에페 4,6).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하느님이 한 분이시기에, 하느님의 신성은 완전합니다. 하느님이 한 분이 아니시라면, 하느님은 외아들을 낳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 분이신 까닭에, 하느님은 자신이 피조물과 신성 안에서 행하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하느님만이 하나 됨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 됨이야말로 하느님의 특징입니다. 하느님이 하느님이신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느님은 하느님이 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수를 지닌 것은 모두 1이라는 숫자에 의지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1이라는 수는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풍부함과 지혜와 진리는 하느님 안에서 완전히 하나입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 됨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하나 됨 속에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은 하나입니다. 현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이 빙빙 도는 것은 만물을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하늘이 빨리 움직이는 것이다."(28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1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히브 10-13장 / 야고 1-5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토요일 이웃 종교(생태)의 날
이름 없는 하느님, 김경재
한국 고대사에 나타난 하느님 신앙과 풍류도
하느님 신앙과 불교와의 지평 융합
풀 한 포기로부터 시작해서 인긴에 이르기끼지, 박테리아로부터 시작해서 대우주 은하계의 항성에 이르기까지 , 모든 존재자는 서로 의존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더불어 현존한다. 그러므로 불교적 실재관에서 보면 타자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연민의 마음을 갖고 그 고통을 덜어주려고 노력하는 일은 결코 가진 자들과 권력자들이 시혜나 동정을 베푸는 일이 아니라 마땅히 그래야 하는 당위가 된다.
대승 불교가 일어났던 기원전 200년을 전후하여, 반야공(般若空) 사상이 활발하게 피어나는 중에 위대한 학승 한 사람이 태어났다. 대승 불교 각 종파의 시원이 된다는 나가르쥬나(Nagarjuna)가 그 사람인데, 그가 쓴 <중론>(中論)은 철저한 비판 정신, 곧 ‘부정의 논리' 로서 피사현정(破牙顯正)을 통해 각종 인식론적 허망함을 밝히고 불변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이 데올로기를 비판한 책이다. 그는 삼라만상의 현상은 ‘인연 생기법'에 의해 성주괴공(成住壞空)하는 변화의 연속일 뿐이요 불변의 실세나 영원한 속성 따위는 없다며, 알고 보면 “낳는 것도 죽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아니고, 동일한 것도 다른 것도 아니고, 영원한 것도 딘절되는 것도 아니다” 라고 하였다. 만유의 실상과 실제는 오로지 공(空)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진실을 꿰뚫어 깨닫는 지혜가 참 지혜인 반야(般若)이다. 엄밀하게 불교적 실재관에서 보면 ‘창 없는 단자(單子)'와 같은 독립적 의식의 주체'로서 개인의 불멸하는 실체성이나 서구 종교가 말하는 절대적 실체로서의 신 또는 창조주 같은 ‘절대적 타자’도 동시에 부정된다.(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