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 7일 토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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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태 9,35)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헐뜯는 자들의 무딘 마음을 벌주기를 삼가셨을 뿐 아니라, 꾸짖지도 않으셨습니다. 이는 그분의 온유함을 알려 주는 또 다른 증거이며, 그들의 악의적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이루어질 표징들과 더욱 명확하게 전개될 논박으로 당신의 영광에 관한 더 많은 증거될 논박으로 당신의 영광에 관한 더 많은 증거를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온 고을과 마을과 회당을 두루 다니시며, 당신을 공격하는 이들
에게 똑같은 욕설로 대하지 말고 더 자비롭게 대하라고 모든 이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동료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서도 그에게 선을 행하십시오. 그들이 어떤 짓을 하든 그들에게 선을 행하기를 그치지 마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더욱 큰 상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욕을 먹고 선을 행하기를 그만둔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바랐다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는 당신은 오직 선올 행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려고 두루 다니셨습니다. 그분은 병자들이 당신께 오기를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다스림에 관한 복음과 그들의 병 치유라는 두 가지 축복을 가지고 몸소 서둘러 그들에게 가셨습니다. 그것을 주시기 위해, 아무리 작은 마을도 지나치지 않고 온갖 곳을 두루 다니셨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3
하느님 바깥에 있는 것은 무일 뿐이다
모든 이의 아버지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에페 4,6).
하나가 신적이라면, 여럿은 어떠한가? 엑카르트는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다양한 사물을 보지 말고, 우리의 통합적인 의식을 발전시키라고 말하고 있는가? 엑카르트라면 우리의 문제는 존재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고 답했을 것이다. “모든 피조물은 서로 의존한다”고 엑카르트는 잘라 말한다. 모든 존재는 맑고 투명한 하느님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존재들을 볼 때 그들에게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도 참말이다. 그렇지만 분리 자체가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분리는 맺음말이 아니다. 참된 앎은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가르는 앓이 아니다. 참된 앓은 양지를 아우르는 앎이다. 바꾸어서, 이분법은 앎이 아니다.
변증법적 의식이 참된 앎이다. 우리는 변증법적 의식을 통해 사물을 알고 그들의 차이를 존중하되, 만물이 맑고 투명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292)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2월 1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2티모 1-4장 / 티토 1-3장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 토요일 이웃 종교(생태)의 날✝️
이름 없는 하느님, 김경재
한국 고대사에 나타난 하느님 신앙과 풍류도
하느님 신앙과 불교와의 지평 융합
모든 종교와 철학에서 본질계와 현상계, 초자연계와 자연계, 영원과 시간, 성(聖)과 속(俗)의상호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하는 문제가 그 철학과 종교의 성격을 규정 하는 관건이 된다. 흔히 전자를 후자와 엄밀하게 구별하든지 , 존재론적으로나 가치론적으로 진지를 후자보다 높은 차원의 실재로 규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대승 불교의 특징은 그 양자를 매우 역설적이게 ‘하나’라고 파익히여 불가분리적 관계로 보며, 진여로서의 실재가 나타내 보이는 두 가지 면이라고 이해한다. 이를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이라고 부르면서 <대승기신론>에서는 그 양자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마하야나의 기르침은 다음과 같다. 즉 마음은 하나이지만 그것은 두 개의 상이한 측면에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각각 ‘실재의 측면에서 파악되는 마음(心眞如門)과 현상의 측면에서 파악되는 마음(心生滅門) 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두 측면은 그 각각이 ‘총체' (總禮)로서, 각각 일체의 사물과 현상을 포괄한다. 이것은 곧 이 두 측면이 오직 개념상으로만 구분될 뿐 각각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위에 인용한 (대승기신론서>의 지론이 저 유명한 <반야심경>의 중심 주제인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불이공 공불이색"(色卽是空 空卽是色 色不異空 空不異色)의 기신론적 표현이다. <반야심경>에서 색계(色界)란 생멸문을 말하며 공계(空界)란 진여문에 해당된다. 대승 불교의 이러한 실재에 대한 인식론적 구조는 현대 과학 철학의 태두라 일컫는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적 실재관과 너무나 비슷한 점이 많다.(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