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선포합니다.
네 복음서는 요한을 소개하면서
이사야서를 언급합니다.
루카를 빼고 세 복음서가 한 구절만 언급하지만
루카는 좀 더 길게 이사야서를 인용합니다.
이사야서의 인용으로
요한이 주님의 다가오심을 준비한다고 말합니다.
루카는 좀 더 길게 인용하면서
주님께서 다가오시는 목적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구원을 보여주기 위해서
주님께서 오십니다.
원래 이사야서는
주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말하지만
루카는 그것을 하느님의 구원으로 바꿉니다.
구약에서 주님은 성부 하느님을 가리키는 단어였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구원하시는 것으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영광과 하느님의 구원은
비슷한 뜻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여기에서 초점이 되는 단어는
'모든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하느님의 구원을 받는데 아무런 구분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누구에게만 구원을 주시고
누구에게는 주시지 않는 방식이 아닙니다.
구원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을 주시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구분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보상이 아닌 선물로 다가오기에
받을 자격보다는 받으려는 의지가
더 중요하게 보입니다.
더 나아가 자격이 없다고 느낄수록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이 필요하기에
하느님께서는 더 주려고 하십니다.
구원을 주시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분을 맞아들이고
그분께 향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들일 때
그 자비로 우리가 충만해질 때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함께 기쁨의 나날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