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염시태 축일에 관해 묵상하다가 느닷없이
옛날 신학교 때 들은 원로 신부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희는 가서 그런 강론하지 말라는 것으로서
당신 본당에 새 사제가 보좌신부로 왔는데
오늘 무염시태 축일 강론을 이렇게 했답니다.
곧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예수님을 잉태하신 것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축일은 그런 것이 아니지요.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것을 기념하는 거지요.
그리고 원죄 없이 잉태되신 것이기에
마리아의 공로가 아니고 그렇다고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의 공로도 아니지요.
하느님에 의해 그리고 천지창조 이전부터 있었던
하느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잉태되신 것이며.
그렇기에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신 것은 순전히 은총이지요.
그래서 엘리사벳이 말하듯 은총을 가득히 받은 마리아인 겁니다.
그러니 마리아를 너무 추켜세울 것이 아니라는 사람도 있지만
이번에 저는 하와와의 비교 관점에서 마리아의 위대함을 보고자 합니다.
매우 조심스럽게 주장하는 바이고 그래서 제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면,
겸손하게 생각을 바꾸겠습니다만 하와도 원죄 없이 잉태된 여인이 아닐까요?
우리 교리에 의하면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원죄이고,
그 후손들도 원죄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고 하지요.
아무튼 하와도 원죄 없이 잉태된 여인이 맞다면
원죄 없이 잉태되었는데도 하와는 죄를 지는 것이고,
마리아는 원죄 없이 잉태되었을 뿐 아니라 그 후에도 죄를 짓지 않았으며
이 말은 은총을 많이 받았을 뿐 아니라 은총을 유지한 여인이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마리아는 원죄 없이 잉태되는 은총을 받은 여인일 뿐 아니라
받은 은총을 잘 유지한 여인인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선 은총을 잘 받기는 합니까?
은총을 받으려고 하지 않아서 아예 못 받는 경우가 있고,
받으려는 자세는 되어 있지만 은총이 은총인 줄 몰라 못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은총을 받으려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는
교만하기에 다른 이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하느님의 은총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다른 이의 도움은 필요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은 필요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은총을 받으려고는 하지만 받은 은총이 은총인 줄 모르는 경우는
자기의 입맛에 맞는 은총만 은총인 줄 알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햇빛은 은총이고 비는 은총이 아니라고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다음으로 마리아처럼 받은 은총을 잘 유지하는 것에 대해 보겠습니다.
세례로 이전의 죄를 씻는 은총을 받았다고 우리는 믿는 사람들인데
받은 다음에는 그 은총을 잘 유지하느냐 그 말입니다.
다시 죄에 떨어지는 일이 많고,
그것이 다 자유의지를 자기 욕구 만족을 위해 쓰기 때문이지요.
사랑을 위해 자유를 쓰지 않고 자기만족을 위해 쓴다는 말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마리아를 정결한 동정녀라고만 하는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사랑의 어머니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신 그 정결함은 은총이지만
그 정결을 계속 잘 유지하여 주님을 잉태한 것은 그녀의 사랑입니다.
이 두 가지를 다 기념하고 본받아야 할 우리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