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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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말씀 묵상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마태 11,12)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요한 때”나 예수님의 때는 시간과 관련지어서가 아니라, 성경 말씀을 듣는 이의 영혼의 상태에 관한 밀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예수님께서 활동하신 때를 뜻하는 말이 분명합니다. 시편은 그때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
의 시대에 정의가, 큰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시편 72,7), 앞서 가르침을 받은 이가 예수님의 말씀이 시작될 때 와서, 울퉁불퉁하고 가파른 곳에 길을 내듯 기초적인 사실을 알립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차지하려고 해서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비아제타이’는 ‘폭력을 가한다’는 능동적 의미가 아니라 ‘폭력을 당한다’는 수동적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완전한 ‘말씀’께서 율법과 예언자라는 교사와 관리인들 아래에서 자유를 기다리던 이를 따뜻이 맞아들여 그에게 아버지의 상속을 거저 주신다면,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는 말은 참으로 옳습니다.
-오리게네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3
하느님 바깥에 있는 것은 무일 뿐이다
모든 이의 아버지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에페 4,6).
이와 같이 사물의 핵 속에는 차이가 아니라 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안다는 것은 관계를 안다는 뜻이다. 그것은 변증법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 됨을 알거나 순수하게 아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앎”이다. 복 있는 사람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알고 사랑한다. 그는 하느님 안에 있으며, 사물과 상호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변증법적 인식 방법이야말로 우리가 장차 영생 속에서 누릴 복에 꼭 필요한 요소다. 그것은 하느님 안에서 사는 삶의 열매다. 그것은 하늘이다. “하늘은 사물 한가운데 있다. 하늘은 모든 끝에서 똑같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 "변증법적 의식도 사물 한가운데 있다. 그것은 모든 끝에서 똑같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것은 양자를 아울러 생각하고, 양자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변증법적 의식은 설교 12에서 언급한 차이들을 화해시킨다. 변증법적 의식이야말로 새사람,하늘의 사람이 되었다는 징표다. 실로, 변증법적 의식은 복된 의식. 복 있는 사람의 의식이다. 깨끗한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깨끗함이 이원성을 뜻하는 게 아니라면, 복은 이분법 - 이원론 - 의 끝장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신적인 은총의 바다에 푹 잠기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는 “존재의 테두리”이기에, 엑카르트는 하늘을 가리켜 “둥근 존재”
라고 부르며, 우리의 마음도 “끊임없이 둥글게 움직인다”고 말한다. 영생과 어깨동무하고 다가오는 복은 둘 됨을 끝장내고 하나 됨을 시작한다.(29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2월 2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묵시 1-6장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목요일 성모님의 날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5 장 두 천사 세상을 떠나다
성체의 예수님과 함께 희생이 되다
이리하여 지상에서의 그의 꿈은 이루어쳤고 이제 남은 일이라곤 단 한가지 천국에 가서 사랑의 임금님이신 예수님을 온통 차지}하는 것뿐이었다. 천국에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감추시지 않고 영광중에 몸소 나타내 보이실 것이다.
히야친따는 육체척 힘이 쇠진하는 반면 그 영혼은 정점 더 깊은 정신계의 신비에 철두철미하게 몰업되어 갔고 그 눈은 서서히 다가오는 영원한 세상까지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머지 않아 닥쳐 올 섭리적인 시련에서 스스로 져야 하는 고행의 십자가를 견디어 낼 힘을 하늘의 발현자께 간청하고있었다.
저녁때가 되면 열이 오르는 때문인지 때때로 히야친따는 루치아에게 하소연을 하는 때가 있었다.
“난 머리가 많이 아파. 게다가 목이 말라. 그렇지만 죄인들을 위해 희생을 드리고 싶기에 물은 마시지 않겠어!”
또 어떤 사람이 무엇이 필요한지 말해라 했을 때 그녀는,
“고마워요. 그렇지만 아무것도 필요치 않아요.”
라고 대답했으나 모두가 방을 나가자 루치아에게 진실을 털어놓았다.
“정말은 목이 퍽 말라. 허나 또 한 가지 희생을 하려고 물먹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어.”
다음날 어머니가 우유 한 잔을 가지고 왔다.
“엄마, 고마워요.”
하고는, 잔을 밀어냈다. 어머니는 어떻게든지 마시게 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얘는 아무것도 마시질 않으니.... 무얼 주어도 다 싫다고만 하는구나.”
하고 불쌍한 어머니는 한탄을 하면서 초라한 모습으로 물러갔다. 루치아는 너무 안스러워서 앓는 친구에게 타일렸다.(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