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이고,
그 가운데서도 즈카르야가 더 중심에 있습니다.
천사의 말을 믿지 않은 사람이 즈카르야였기 때문입니다.
판관기 삼손의 탄생 경위에 천사의 말을 들은 것은
아버지 마노아가 아니라 그의 아내였는데
세례자 요한의 탄생 경위에는 즈카르야가
천사의 말을 들었고 그러나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쩌자고 믿지 않았을까요?
청원이 받아들여졌다고 천사가 말하는 것을 보면
자기가 청원한 것이 받아들여졌는데 어쩌자고 믿지 않았을까요?
제 생각에 그것은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젊었을 때 그 말을 들었으면 그 말에 너무 기뻐했을 것이고 즉시 믿었을 텐데
너무 늙었고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뒤에 들었기에 얼떨떨해서 그랬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하느님은 참 고약한 분이십니다.
우리 인간의 타이밍에 맞추지 않는 분이십니다.
즈카르야가 아기를 주십사고 젊을 때 청할 때는 주지 않으시다가
다 늙어 포기했을 때 주시니 이것은 무슨 심보입니까?
인간 욕심의 타이밍이 아니라 인간구원의 타이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굳게 믿듯이 시간의 주인은 언제나 하느님이실 뿐 아니라
특히 구원의 시간은 하느님께서 주인이시고
그중에서도 인류 구원의 시간은 더더욱 하느님께서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내 욕심을 받아들여 주시기를 청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구원해주시기를 우리는 청해야 할 것이고,
그때를 하느님께 맞추는 것을 즈카르야를 보고
다시 말해서 즈카르야를 반면교사 삼아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즈카르야를 반면교사 삼을 일이 또 있습니다.
침묵입니다.
즈카르야는 뚫린 입으로 불신을 토로했고,
그 결과 침묵을 당했습니다.
이것을 보고서 우리는 불신의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아야 함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말에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하느님께 대해서든 인간에 대해서든 불신의 말은 침묵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침묵이 숙성되어 입을 열어야 할 때가 되면
하느님을 찬미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입은 열려야 하겠지요?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