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카르야는 아들의 할례식 때
아기의 이름을 요한으로 정합니다.
그러자 그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가 한 첫 마디는
하느님 찬미였습니다.
즈카르야는 먼저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주신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께서 전에 약속하는 것을
이루어주신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아들 요한의 임무도 짧게 언급합니다.
자기 아들의 할례식이지만
즈카르야는 요한보다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은 말을 합니다.
이미 태어난 요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자기 집에 머무는 3개월 동안
임신한 두 여인을 돌보면서
즈카르야는 엘리사벳의 출산도 기다려왔지만
마리아의 출산도 기다려온 것처럼 보입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 태중의 아기를 알아본 것처럼
즈카르야도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그것으로 하느님께서 약속을 지키셨다는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쁨에
자기 아들이 하나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또다른 기쁨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
즈카르야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좁게는 아들의 출산에서부터
넓게는 이스라엘의 구원에까지
그 기다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원하지만
원한다고 해서
인간의 힘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에
희망을 놓기 쉬운 상황이지만
즈카르야는 그것을 놓지 않았고
결국 그 희망은 기쁨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즈카르야에게 하느님은
희망을 이루어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고 잊으신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제 곧 빛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우리 하느님께서는 자비의 하느님이시기에
우리는 우리의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우리도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희망을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