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5일 수요일 주님 성탄 대축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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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고 도미니코 신부
오늘은 주님 성탄 대축일입니다.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하느님을 찬미 한 것 처럼 우리 또한 다음과 같이 찬미하며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우리 각자는 내면에 하느님이 탄생하시고자 하는 하나의 마구간을 갖고 있습니다. 보잘것 없고 지저분한 우리 내면의 마구간에 거하시려고 그분은 연약하고 가난한 아기의 모습으로 찾아 오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오신 사랑의 육화입니다. 육화는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사랑 자체의 사람이 되시어 오심을 말합니다.
최고선이신 그분이 모든 피조물과 사랑의 친교를 이루시고자 가장 완전한 최선의 방식을 택한 것이 육화입니다. 그러나 육화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표현처럼 모든 인간의 죄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였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도 원죄를 치유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육화는 보다 나은 방법으로서 인간의 선을 도모하는 효과와 아울러 희망, 사랑, 정의, 신성에의 참여를 보다 완전케 하며 다른 한편으로 악의 유혹, 인간 존엄성의 상실, 교만과 허영으로부터 우리를 멀리하게 합니다.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육화는 우리 또한 육화의 삶을 살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화는 현세의 일들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현세의 어려움과 기쁨과 고통 등 모든 것을 신앙안에서 하느님의 뜻에 일치시키는데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의 것을 업신여기지 않고 올바르게 사용하여 세상에서의 성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나라를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실현하는 것으로 사랑, 나눔과 봉사활동 등 그리고 자기가 주어진 일상의 일에 충실하는 헌신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육화는 더 깊이 들어가면 나라와 문화에 파고 들 뿐만 아니라 인터넷 매체와 같은 세계 안으로 구체화 됩니다. 인터넷 환경이 새로운 종류의 사람을 만들고 국경이 없어지는 세계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세계는 오늘날 육화의 가장 큰 도전과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인터넷 우주에 들어갈 때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대해서 가졌던 것과 같은 엄청난 애정과 연민을 품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육화는 시공을 초월하는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어야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육화의 삶을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믿는 영혼이 성령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할 때 우리는 그분의 정배들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할 때 우리는 그분에게 형제들이 됩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가지고 우리의 몸과 마음에 그분을 모실 때 우리는 그분의 어머니들이 됩니다. 표양을 보여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할 거룩한 행실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게 됩니다”.
구체적인 육화의 삶을 사는 성탄시기 되시기 바랍니다.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2월 4주간
<금주간 성서 읽기> 금주간 성서읽기 묵시 15-22장
<생태 영성 주간> 고요와 침묵과 절식을 통한 단순한 삶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3기 : 1050 ∼ 1300년
중세 중기 교회의 전성
제 9절: 인노첸시오 3세부터 보니파시오 8세까지의 교황직
보니파시오 8세
완전히 변화된 세계에서 교황의 지도권 주장을 다시 한번 과시하려는 교황 보니파시오 8세(1294-1303)의 시도는, 하나의 진기한 시대 착오처럼 보인다. 종교적인 깊이가 없고 현실생활에 대한 통찰력이 없이 지나치게 권위의식을 지녔던 그는, 교황의 지도하에서의 신정정치적인 서구의 세계국가 수립을 꿈꾸고 있었다. 이때 그는 교황직의 명성이 황제권과 정치적인 권력투쟁을 한 수년 동안에 얼마나 큰 손상을 입었는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세계 지배를 위한 계획들을 추구하고 있던 프랑스의 필리프 미왕(1285∼1314)에 대하여 그가 교황권의 영적 • 정치적 우위를 시행하려고 「우남 상탐」Unam Sanctam (1302) 칙서에서 “양검론” - 이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루카 복음 22장 38절에서 두 권한, 즉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교회에만 위임하였다고 한다 - 을 끌어대고 교황에 대한 순명이 어떠한 경우에도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언명하였을 때, 중대한 결과 를 낳는 투쟁이 벌어졌다. 필리프는 교황의 파문에 대하여 공의회에 상소로써 응수하였고, 1303년 9월 소수의 군대로 하여금 아나니(Anagni)에 있는 교황의 성(城)에서 그를 체포하게 하였다. 아나니의 시민들이 2일 후에 교황을 구출하였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폭력행위는 교황직의 무력함과 정치적으로 무의미함을 충분히 드러냈다. 교황은 저항할 힘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세계 지배의 꿈이 무너진 후 얼마 오래 살지를 못하였다. 몇 주 후에 그는 로마에서 사망하였다. 그와 더불어 교황직의 보편적이고 중세적인 우위성은 끝났다. (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