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4일 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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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말씀 묵상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
사랑 없는 지식
악마들에게는 상당한 지식은 있었는데 사랑이 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이 그분에게서 받을 벌을 두려워했지만 그분 안에 깃들어 있는 정의는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실상 그분은 당신이 원하는 만큼만 그들이 당신을 알아보게 하셨고, 또 그들에게 합당한 정도로만 알아보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이 당신을 알아보게 하셨지만, 거룩한 천사들에게 자신을 알린 것처럼 알리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점에 입각해서 천사들은 그분의 영원에 참여하면서 그 영원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마들에게는 당신을 두려워 떨어야 할 대상으로 알게 하셨으니, 예정된 인간들을 그들의 포악한 권세로부터 해방시켜 당신의 왕국과 영광으로 데려올 참이었던 것입니다. 그 영광은 영구히 진실한 영광이요 진실히 영속하는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악마들에게 당신을 알아보게 하신 것은 영원한 생명과 불변하는 광명으로서의 당신 모습이 아닙니다. 저 광명은 경건한 존재들을 비추어 주는 광명이며, 그분 안에 있는 신앙으로 만사를 보게하고 마음을 정화하는 그런 광명입니다. 그분이 악마들에게 당신을 알아보게 하신 것은 당신 권능의 일시적 효과를 통해서, 은밀하기 이를 데 없는당신 현존의 표지를 통해서였습니다. 악마들은 비록 악한 영들이기는 하지만 천사다운 지각을 지녔으며, 그분의 권능과 현존 같은 것들은 인간들의 취약한 지각보다도 그들의 지각이 더 잘 간파하게 마련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4
하느님이 그대 안에서 하느님 되게 하라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게 우리 가운데 나타났습니다(1요한 4,9)
엑카르트는 우리의 형이상학적인 무에 대한 이러한 통찰로부터 중요한 결론을 도출한다(그는 우리 자신을 심리학적인 무로 여겨야 한다거나 우리 자신을 깎아내려야 한다거나 우리의 재능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 존재의 근본적인 근원에서 볼 때, 우리는 무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신적인 지식과 사랑’ 속에 푹 잠기려면 사물을 맑고 투명하게 보는 법 - 사물을 통해 그들의 신적인 근원을 보는 법 - 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엑카르트는 ”만물은 무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만물은 무라는 것을 알아채는 그곳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빛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느님의 빛이 우리에게 쇄도해 들어오면, 우리는 피조물의 근원이 무라는 것을 알고, 피조물을 통해 그들의 근원인 하느님을 볼 수 있다.(31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월 2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요한 5-7장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화요일 성령(성시간)의 날
우리는 일상생활의 리듬과 평화를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이렇듯 리듬과 속도를 잃어버리면 존재의 균형이 깨지기 쉽고 예기치 않았던 거리와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긴장 · 분노 · 욕설 · 알코올 · 마약 중독 · 말다툼 · 싸움 · 불만족 · 불평 · 불안 · 두려움 · 번뇌 · 불면증 같은 것은 우리가 하느님과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자연 리듬, 곧 내적 평회를 잃어버렸다는 증거입니다.
자연스러운 리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시간과 장소를 따로 마련해야 합니다. 오늘날은 리듬을 잃어버리게 하는 위험 요소와 상황이 너무 많아 우리는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피상적으로 서둘러서 기도하는 신앙인은 이 새로운 리듬에 들어가지 못하며 삶의 변화를 체험하지 못합니다. 이런 이유로 신앙인 가운데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만이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에 다다라 우리를 치유하고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소비주의 분위기와 물질주의 사회는 많은 중독자를 만들어 냅니다. 오늘날 인류는 더 많은 것을 새롭게 필요로 하고 그 욕구는 점점 더해가고 있습니다. 생존하기 위해 모든 욕망과 욕구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욕구를 채울수록 우리 자신이 더욱 불행하고 냉담하며 무감각해진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이 자유롭게 하느님과 서로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면 스스로 파멸하게 될 것입니다.(285)
-성시간, 슬라브코 바르바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