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0일 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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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말씀 묵상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마르 2,21)
내적 기쁨과 외적 기쁨
‘포도주’는 내적으로 새롭게 해 주고, ‘옷’은 외적으로 감싸 줍니다. 둘 다 영성 생활과 관련한 말입니다 ‘옷’은 세상을 비추기 위하여 실천하는 선행을 가리키고, ‘새 포도주’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열정을 뜻합니 다. 이를 통해 우리 영혼은 우리 창조주 앞에서 내면의 영적 쇄신을 이루게 됩니다.
-존자 베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5
철저한 버림은 참으로 그대로 두는 행위다
복되도다,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마태 5,3)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가난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나까?’라고 아무개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나다: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겠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바람을 간직하고서 그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런 사람은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가난을 소유한 것이 아닙니다. 실로, 그런 사람은 자신의 뜻으로 하느님의 뜻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제대로 된 가난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참된 가난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여의고, 그것이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행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신적인 진리를 걸고서 말합니다. 여러분이 의도, 곧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겠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한, 여러분이 영원과 하느님을 바라는 마음을 먹는 한, 여러분은 제대로 가난해진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만이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최초의 근원으로 돌아갔을 때, 거기에는 하느님이 없었으며, 나는 나의 원인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순수한 존재였으며, 진리를 기뻐하는 가운데 나 자신을 아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나는 나 자신을 바랄 뿐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내가 바란 것은 바로 나였고, 있는 그대로의 나야말로 내가 바란 것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하느님과 만물을 여의고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의지의 상태를 떠나서 나의 창조된 존재를 받아들이자마자, 나는 하느님이라는 분을 가지게 되었습니
다. 실로 피조물이 존재하기 전에는 하느님은 “하느님”이 아니었고, 있던 그대로의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피조물이 존재하게 되고, 자신의 창조된 존재를 받아들이자마자, 하느님은 더 이상 스스로 있는 “하느님”이 아니라 피조물 속에 있는 “하느님”이었습니다.(318)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요한 8-10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월요일 거룩한 독서(렉시오디비나)의 날
요한 8,12-20
나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바리사이들이 “당신이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있으니, 당신의 증언은 유효하지 않소.” 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여도 나의 증언은 유효하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심판을 하여도 내 심판은 유효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의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은 유효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로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에 관하여 증언하신다.”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의 아버지도 알지 못한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곁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을 잡지 않았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