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말들은 그리 좋은 말들이 아닙니다.
‘논쟁’, ‘시험’, ‘요구 이런 표현들인데 바리사이들이 흔히 하는 짓입니다.
이 대신 그러니까 논쟁 대신 담화 또는 나눔을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시험하지 않고 믿으면 얼마나 좋고,
믿지 못하더라도 시험 대신 알려고 애쓰고 질문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리사이들을 볼 때 더 안타까운 것은
표징을 요구하지 않고 요청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랬다면 주님도 그들을 버려두고 떠나지 않고 표징을 보여주셨을지도 모르지요.
사실 우리가 겸손하고 진실한 신앙인이라면
주님을 시험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표징을 요구하지 않는 것도 말할 것도 없고,
아예 요청하지 않을 것이고, 감히 요청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하늘에서 표징이 너무도 필요할 때
표징을 주시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은 있을 수 있고,
그래서 아주 겸손하게 청을 드릴 수 있는데 그것이 기도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오늘 내친김에 이런 묵상과 성찰도 합니다.
하느님께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에게도 요구하지 않고 요청하면 얼마나 좋을까?
겸손은 사랑을 낳고 사랑을 초대합니다.
겸손한 요청은 사랑의 응답을 부릅니다.
아기의 요청이 언제나 엄마의 사랑스러운 응답을 부르듯
겸손한 사람의 요청은 사람의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응답하게 합니다.
그리고 요구하지 않고 요청하는 사람에게
갈등과 싸움이 없는 것은 덤입니다.
‘구’를 ‘청’으로 하나만 바꾸면 되는데 그것이 그렇게 어려울까요?!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