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오늘 집회서의 시작은 지덕(智德)에 관해 얘기하고,
오늘 복음은 신덕(信德)에 관해 얘기하기에
오늘은 어떻게 덕들을 지닐까에 관해 묵상코자 합니다.
오늘 저는 덕을 ‘쌓을까’대신 ‘지닐까’하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덕을 쌓는다고 흔히 얘기하잖습니까?
그리고 이는 한자어의 적선(積善)과도 같은 맥락입니다.
적선을 말 그대로 풀이하면 선을 쌓는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이처럼 동양에서는 선이나 덕을 내가 쌓는 것으로,
내가 농사지어 낟가리를 높이 쌓듯이 쌓는 것으로 이해했고,
그러니까 나의 수행이나 노력의 결실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 그리스도교는 덕과 선 모두 하느님에게서 온다고,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들이라고 얘기합니다.
만선(萬善) 만덕(萬德)의 근원이신 하느님이라고 흔히 얘기합니다.
‘프란치스코의 잔 꽃송이’에서 그는 왜 많은 사람이 자기를 따르는지,
자기의 덕을 칭찬하는 맛세오 형제에게 이렇게 답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그 놀라운 일을 위해서 그 이상 더 천한 피조물을 찾지 못하셨기에
나를 택하시어 이 세상의 존귀한 자, 아름다운 자, 강한 자,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그래서 만선만덕(萬善萬德)은 창조주 하느님께 오는 것이지 결코 피조물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며,
누구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아니더라도 하느님을 겸손하고 진실하게 믿는 사람이라면
만선 만덕이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고,
모든 것은 모든 선이신 하느님께 나온 선들이라고 믿는 것이
프란치스칸 영성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믿음이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덕과 선을 어떻게 하면 지닐 수 있겠습니까?
아주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주십사고 청하면 되고 기도하면 됩니다.
오늘 어떻게 하면 악령을 쫓아낼 수 있겠냐는 제자들의 물음에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청하려면 가난의 자세, 네겐 없다는 자세가 필수입니다.
오늘 아이 아버지가 믿음이 없다고 꾸짖음을 듣자 취한 태도,
믿음이 없으니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달라고 한 태도 말입니다.
사실 자기에게 믿음이 있다거나 지혜가 있다는 사람은 청하지 않겠지요.
그런데 없으면서도 청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지금 없지만 내 힘으로 얻을 수 있다고 자신을 믿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가 없는 사람 중에서도 지혜가 없는 사람이고
우리가 흔히 무지막지(無知莫知)하다고 할 때 그런 사람입니다.
받아 지녀야 하는데 받지 않아 지혜가 없고 그래서 지혜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의 가난을 인정하고 청하는 겸덕(謙德)이 있는 사람이 지혜롭고,
이런 사람에게 하느님은 지혜를 후하게 주신다고 집회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님께서는 지혜를 만드시고 그것을 당신의 모든 피조물에게
후한 마음으로 쏟아부으셨으며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로 주셨다.”
이것이 우리 교리에서 말하는 주부덕(注賦德)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리는 습득덕(習得德)도 얘기합니다.
하느님께서 쏟아부어 주신 덕(주부덕)을 매일같이 갈고닦아
그 덕을 내 덕으로 만드는 것이 제 생각에 바로 습득덕입니다.
하느님이 비를 주시고 햇빛을 주셔도 그것을 흘려버리지 않고
농사에 잘 활용해야 곡식이 영글듯 덕(德) 농사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