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냐고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깨닫지 못한다는 서술의 문장보다
질문의 문장으로 예수님께서는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게 일어난다는 것을
일깨워주십니다.
작은 티를 볼 수 있는 사람이면
당연히 큰 들보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티를 보면서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것은
이상한 것입니다.
이러한 자연스럽지 않은 결과는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동할 때 생기기도 합니다.
즉 일부러 들보를 보지 않는 것입니다.
내 모습은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모습만 바라봅니다.
좀 더 나가면
자기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그래서 바라보지 않으면서
사람은 점점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 큰 것은 보이지 않으면서
그 작은 것은 너무나 잘 보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그 모순은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자신은 점점 자신이 모순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마음
나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어려움의 상황이 왔을 때
그 상황에 머물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만 합니다.
그것을 위해 수도회를 떠나거나
직장을 그만두기도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마음만으로도 떠나려고 합니다.
여기에서의 안타까움은
현실을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늘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서
기쁨도 함께 잃게 됩니다.
나 자신의 모습에서 이상하다고 느끼는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행동을
부자연스럽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가 나를 돌아볼 때입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면서
아니 이미 오래 전부터 습관이 되어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부분이 무엇인지
찾아볼 때가 왔습니다.
그 모습을 찾아가면서
삶의 기쁨도 함께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