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남을 잘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남을 도무지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보통 그러합니다.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과거에 긍정적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에 의해 부정적인 시각이 형성되었기에
과거에 해봐서 안 되었으니 지금도 앞으로도 안 될 거라 보는 겁니다.
그러나 과거에 안 되었어도 지금은 될 수 있고,
지금 안 된다 해도 노력을 더 하면 미래에는 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무엇이 안 될 거라고 보는 것은
그것이 될 수 있는 객관적인 가능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불신, 곧 자기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할 自信感이 없다는 것은
자기에 대한 믿음이 없기에 무엇이든 안 될 거라고 보는 것이고
안 될 거라고 보기에 아무 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신감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능력의 한계도 있고
그리고 과거 실패의 경험이 너무 많아서 자신감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라도 믿음을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자기에 대한 믿음도 없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도 없습니다.
이것이 더 큰 문제인 겁니다.
그렇다면 어찌 이럽니까?
자기를 믿을 수 없다고 어찌 하느님도 믿지 않습니까?
아마 하느님도 자기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자신을 하느님께 투사하여
믿을 수 없는 하느님으로 만든 것입니다.
어쩌면 믿음이란 게 본래 그건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믿음이란 작은 것을 큰 것을 믿는 것이고,
지금까지 한 것을 보고 미래도 그럴 것이라고 내다보는 것이지요.
내가 아는 한 그는 이런 사람이니
더 큰 일을 맡겨도 좋다고 그를 믿는 거고,
지금까지 그가 한 걸 보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그를 믿는 겁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나에 대해서건 하느님에 대해서건 믿음의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불신으로만 일관하였기에 믿음이라는 것이 무언지 전혀 모르고
그래서 믿음이란 것이 아예 형성되지 못한 겁니다.
지금까지, 특히 어렸을 때 부모에게 불신만 당하였고,
그래서 자신에 대해서건 남에 대해서건 불신밖에 없는데
믿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을 믿겠으며
그 믿음으로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볼 수 있겠습니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의 독서와 복음에서 얘기하는 아브라함은
정말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자기와 자기 아내 어디를 봐도 후손이 생길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한 자식도 가능치 않은데 후손이 별같이 많을 거라는 말을 믿습니다.
후손 중에 예수님이 태어날 것을 내다봅니다.
믿음.
믿음은 이처럼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입니다.
믿음이 클수록 먼 미래까지 내다봅니다.
믿음이 클수록 더 절망적인 데서도 희망을 봅니다.
반대로 믿음이 없으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겠지요?!
남을 잘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남을 도무지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보통 그러합니다.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과거에 긍정적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에 의해 부정적인 시각이 형성되었기에
과거에 해봐서 안 되었으니 지금도 앞으로도 안 될 거라 보는 겁니다.
그러나 과거에 안 되었어도 지금은 될 수 있고,
지금 안 된다 해도 노력을 더 하면 미래에는 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무엇이 안 될 거라고 보는 것은
그것이 될 수 있는 객관적인 가능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불신, 곧 자기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할 自信感이 없다는 것은
자기에 대한 믿음이 없기에 무엇이든 안 될 거라고 보는 것이고
안 될 거라고 보기에 아무 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신감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능력의 한계도 있고
그리고 과거 실패의 경험이 너무 많아서 자신감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라도 믿음을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자기에 대한 믿음도 없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도 없습니다.
이것이 더 큰 문제인 겁니다.
그렇다면 어찌 이럽니까?
자기를 믿을 수 없다고 어찌 하느님도 믿지 않습니까?
아마 하느님도 자기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자신을 하느님께 투사하여
믿을 수 없는 하느님으로 만든 것입니다.
어쩌면 믿음이란 게 본래 그건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믿음이란 작은 것을 큰 것을 믿는 것이고,
지금까지 한 것을 보고 미래도 그럴 것이라고 내다보는 것이지요.
내가 아는 한 그는 이런 사람이니
더 큰 일을 맡겨도 좋다고 그를 믿는 거고,
지금까지 그가 한 걸 보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그를 믿는 겁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나에 대해서건 하느님에 대해서건 믿음의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불신으로만 일관하였기에 믿음이라는 것이 무언지 전혀 모르고
그래서 믿음이란 것이 아예 형성되지 못한 겁니다.
지금까지, 특히 어렸을 때 부모에게 불신만 당하였고,
그래서 자신에 대해서건 남에 대해서건 불신밖에 없는데
믿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을 믿겠으며
그 믿음으로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볼 수 있겠습니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의 독서와 복음에서 얘기하는 아브라함은
정말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자기와 자기 아내 어디를 봐도 후손이 생길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한 자식도 가능치 않은데 후손이 별같이 많을 거라는 말을 믿습니다.
후손 중에 예수님이 태어날 것을 내다봅니다.
믿음.
믿음은 이처럼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입니다.
믿음이 클수록 먼 미래까지 내다봅니다.
믿음이 클수록 더 절망적인 데서도 희망을 봅니다.
반대로 믿음이 없으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겠지요?!
모든 것을 주님의 은총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