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겸손하게 되면 다른 사람 위에 있으면서 판단하고 단죄하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눔을 어제 저는 했지요.
겸손하지 못한 제가 다시 말해서 교만한 제가
저를 경계하는 뜻으로 겸손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도 다음 말씀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너희는 선행을 배워라.”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둘을 합치면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처럼 선생이라고 불리길 좋아하며
가르치려고만 들지 말고 배우는 자세를 가지라는 가르침이 되겠습니다.
사실 나이를 먹으면서 좋아진 점은 옛날보다는 좀 겸손해진 점이 있고,
어디서나 남을 가르치려 드는 훈장 기질은 좀 나아졌지만
배우려는 자세는 아직 너무 부족하기에 아직 저의 겸손은 멀기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가르치려고 들지 않는 것만으로는 아직 겸손하다고 할 수 없고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그래도 겸손하다고 할 수 있지요.
어디서나 배우고 누구에게나 배우는 자세가 되어 있을 때
진정 겸손하다고 할 수 있고 성숙한 겸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런 면에서 저는 교묘한 교만이 있습니다.
삼십 대 후반부터 저는 성경과 프란치스코의 글 외에
다른 책은 거의 책을 읽지 않습니다.
참고하는 차원에서는 책을 뒤적거리기도 하지만
내 인생의 답과 지침이 되는 것은 성경과 프란치스코의 글에서 얻지
다른 책에서는 얻을 것도 없고 그래서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지만 이것이 교묘하게 저를 영적으로 교만케 합니다.
영적으로 우위에 있다며 은근히 남을 낮추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두에게 배우고 모든 것에서 배우려는 자세일 때
그때 모든 사람 밑에 있는 것이고 이것이 진정 겸손일 것이고,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도 스승이 되지 말라고 하신 것에서
더 나아가 섬기기까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되지는 못해도 은총의 담지자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담지자(擔持者)란 맡아 지니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누가 은총의 담지자가 되느냐 하면 겸손한 자가 되는 법이지요.
그것은 비를 제일 먼저 맞는 것은 산꼭대기지만 다 흘려버리고
제일 낮은 계곡에 빗물이 고이는 것과 같고,
바다가 제일 낮지만 제일 넓고 모든 물이 고이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은총의 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은총을 다 흘려버리는 낭비자지만
겸손한 사람은 은총의 가장 훌륭한 담지자입니다.
하느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그 말씀을 듣고 가르친다며 입으로 다 흘려버리지만
겸손한 사람은 그 말씀을 다 마음에 간직하고 행동으로 실천합니다.
나는 담지자인지 낭비자인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